다큐멘터리 진수보인『동토의 왕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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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그간 TV드라머의 가장 큰 취약점은 리얼리티, 즉 현실성의 결여였다. 소설이「실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그리는것」으로 정의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TV드라머 역시「실제 있을 수 있는 일을 극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TV드라머 자체가 반드시 사실일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사실과 가깝게 묘사돼야한다는 점에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우리 TV드라머는 「있을수 있는」일을 극화했다기 보다는「허무맹랑한」이야기를 주로 다뤄온 것이 사실이다.
이같은 리얼리티의 결여는 소설이나 라디오 드라머가 읽고 듣는 과정을 통한 상상력 동원으로 이해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과는 달리 TV드라머의 현장성으로 인한 상상력 빈곤과 함께 현실과의 괴리감을 심화시키고 이해보다는 무조건적 수용을 강요하게끔 된것이다.
근래들어 우리 TV도 다큐멘터리 드라머에 대한 관심을 높여가고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시도됐던 몇편의 다큐멘터리 드라머는 드라머성의 강조로 다큐멘터리적 요소가 크게 위축됐거나 다큐멘터리의 지나친 강조로 드라머성이 약화돼 소기의 송과를 거두기엔 미흡한 것이었다.
이번 MBC-TV가 특별기획으로 선보인 5부작『동토의 왕국』은 다큐멘터리의 잇점을 십분 살리면서 드라머로서의 재미도 훌륭히 이끌어간 다큐멘터리드라머의 진수작이었다.
조총련계 재일동포인 김원조씨가 20년만에 북한땅에 살고 있는 가족을 찾아 단기방문단의 자격으로 40일간의 북한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겪은 일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이제까지의 반공 극과는 달리 북한필름을 최초로 공개함으로써 더욱 생생한 감동을 던져주었다.
오택섭교수(고려대·신방학) 는『동토의 왕국은「그렇고 그런」반공극의 도식적 패턴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돋보인 작품』이라고 평하고『드라머의 감동을 크게 하고 의미를 함축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도입한 북한필름 사용은 성공적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한혜경씨(주부·서울동대문구이문동)는『비판력과 사고력이 부족한 어린이들이 김일성 선전문구를 흉내낼 위험이 있어 보다 늦은 시각의 방영이 바람직했을 것』이란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작품성에 있어 자료필름뿐 아니라 장대한 스케일로 재현시킨 북한 곳곳의 모습도 어색함 없이 처리됐으며 등장인물 모두를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연극배우들로 기용한 점도조총련·북한주민의 생경함을 살리는데 성공적이었다.
특히 주인공이 김일성 훈장을 바다물에 던지는 라스트 신은 현장재현에 충실하면서도 드라머로서의 재미도 잊지 않으려는 연출가의 정신이 응집돼 나타나는것 같아 더욱 인상적이었다. <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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