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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비즈 칼럼

부시맨의 콜라병 기억하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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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조홍식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영화 ‘부시맨’의 주인공이 애지중지하던 콜라병을 기억하는가? 부시맨은 하늘에서 떨어진 콜라병을 신이 내린 선물로 여겨 여러모로 알뜰하게 사용한다. 물을 담아 보관할 뿐 아니라 요리 재료를 손질하거나 심지어 악기로도 사용한다. 부시맨이 아끼던 콜라병을 땅 끝에서 신에게 돌려주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오늘날과 같은 대량소비사회에서 부시맨의 모습을 소비자에게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빈병은 영화 속에서만큼은 아니지만 현실에서도 귀한 것이다. 부시맨이 국내에서 개봉된 직후인 1985년, 이러한 빈병의 회수와 재사용을 촉진하기 위하여 ‘빈용기보증금제도’가 입법되었다. 이 제도는 병에 든 주류와 음료를 판매할 때 제품가격에 별도의 보증금을 포함시켜 판매하고 소비자가 병을 반납할 때 보증금을 반환받도록 한 제도이다. 이 제도의 시행으로 소비자가 소매상에게 병을 반환하는 ‘빈병의 소매상반환체계’가 구축되었고, 이는 다시 소비자·소매상·도매상·제조사로 이어지는 순환체계를 정립시켜 빈병의 효율적 회수와 재사용 확대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빈용기보증금제도는 지난 30년간 쇠락의 길을 걸었다. 소비자가 분리수거함에 버린 병은 파손되기 쉽고 품질이 나빠 재사용 횟수를 저하시키는데, 우리 소비자의 무관심은 유통업계의 소극적 자세와 맞물려 빈병 회수 및 재사용률을 85%에 머물게 하고 있다. 이는 환경선진국인 독일과 핀란드의 회수율이 95%를 상회하는 데 비하여 현저히 낮은 수치다.

 최근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제도개선의 노력이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올 1월 국회는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였다. 개정 법률은 소비자가 빈용기 보증금을 보다 쉽게 환불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소비자 권리를 향상시키고 빈병 재사용을 촉진하는 데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제도 시행 30년 동안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문제를 법률 개정만으로 풀 수는 없다. 소비자는 빈병 반환을 생활화하고, 소매업계는 빈병 회수와 보증금 반환에 적극 참여하며, 도매업계는 소매업계에 대하여 재사용 품질 중심의 회수를 요구하되 취급수수료를 정확하게 지급하며, 제조업계는 재사용이 용이한 표준용기를 도입하고 플라스틱 박스와 같은 편리한 회수 도구를 확대 보급하여야 한다.

 이를 위한 첫 걸음으로 지난 3월 ‘빈용기보증금제도 개선 발전위윈회’가 출범하였다. 정부, 제조업 및 유통업계, 시민사회, 전문가가 무릎을 맞대고 앉아 개정 법률의 시행과정 중 발생할 문제를 논의할 공론장이 마련된 것이다. 출발은 좋다. 위원회는 지난 4월 정부와 관련업계 모두가 참여한 ‘제도 개선을 위한 자발적 협약’을 성사시키고, 빈병 무인회수기 도입 등 소비자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다양한 시범사업도 공동 추진하기로 했다고 한다. 위원회가 환경과 경제를 상생시키는 성공적인 민관 협력모델을 통해 빈용기보증금제도를 일신(一新) 해줄 것을 기대해본다.

조홍식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