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고 끝났지만 사실상 "단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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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7일의 「레오나르도·보프」신부와 바티칸 교리성성간의 해방신학에 관한「대화」는 「화목한 가운데」진행된 것으로 양당사자는 밝혔다.
「보프」신부는 「라칭거」추기경 등과의 4시간의 대화가 『조용하고 허심탄회한 것이었다』고 기자들 앞에서 밝혔다.
자신의 저서 『교회, 카리스마와 권력』에 표현되었던 자신의 견해를 수정하도록 강요방지도 않았다는 것이 그의 얘기였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일간신문 메사케로는 『카톨릭교회의 시계는 공산주의를 배척했던 1948년으로 뒷걸음질쳤다』고 이번 대화결과를 평가했다.
대화·청문·토론 등 바티칸측에 의해 애써 완곡하게 불려지도록 기대됐던 이「세기적 종교재판」은 그냥 판결 없는 「대화」로 끝난 것 같지만 『해방신학은 이미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유죄선고를 받았다』고 서독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논평했다.
지난 3일 바티칸 교리성성의 이름으로 발표된 40페이지에 이르는 「지침」이 남미의 해방신학을 규탄하는 판결문이었다는 주장이다.
이 지침은 원래「보프」신부와의 「대화」가 끝난 뒤 발표될 예정이었으나 브라질의 신문 오글로보가 이 비밀문서를 폭로했기 때문에 앞당겨 발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방 신학에 마르크시즘의 영향력이 스며들어 위험한 방향으로 교회를 이끌어간다고 경고한 이 지침은 그러나 「남미카톨릭교회에 대한 폭력」이라고 남미 출신의 한 신학자는 얘기했다.
『브라질 종단 성직자들의 60∼70%는 해방신학을 신봉하며 유럽중심의 바티칸 교황청의 교회지도 노선에 저항하고 있다』는 것이 브라질의 신학자 「호세·라모스·레기돌」의 말이다.
「보프」신부 역시 『바티칸의 논리는 자기네집 유리창을 통해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을 내다보며 유럽사람들이 설정한 것』이라고 3일 발표된 지침에 대해 말하고 있다.
보수카톨릭세력이 강한 남부 독일지방 프라이부르크에서 발행되는 일간신문 바디스체차이퉁은 바티칸 교황청이 『「보프」의 해방신학을 위험시하고 그의 신앙심에 의심을 갖는 것은 어리석다』고 전제한 다음 바티칸의 경직성이 그 원인인 것으로 지적했다.
기존 교회질서에 대한 솔직한 비판이 두려워 「전통적 유럽신학에 도전하는 특정신학」을 문제로 삼는 것이 이번 재판의 근저에 깔려 있다고 논평했다.
따라서 바티칸이 생산적인 자기반성을 하지 않고 감정적인 자기방어에 급급했다는 지적이다. 그런데도 「보프」신부가 교리성성과의 대화가 끝난 뒤 『따뜻하고 허심탄회한 것이었다』고 표현한 것은 그의 독실한 신앙과 겸손 탓으로 이 신문은 돌렸다.
슈피겔지 역시「요한·바오로」2세가 서독의 「라칭거」추기경을 81년 바티칸으로부터 불러들인 것은 보수적인 독일성직자들의 힘을 빌어 해방신학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남미교회의 대부분이 서독카톨릭에 재정적으로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것을 압력수단으로 이용하려했다는 견해다.
스위스의 노이에 취리허차이퉁은 바티칸이 「보프」신부에게 가장 크게 문제삼았던 것은 교황청의 기구와 그 가치에 도전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하면서 이번 대화에서 「보프」신부로 하여금 그 저서를 수정하도록 요청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논평했다.
이 신문은 또 바티칸 교리성성이 「보프」신부와의 대화가 있기 전에 해방신학에 대해 6페이지의 판결을 내려놓고, 앞으로 발표될 문서에 수록해 놓고 있다고 보도했다.
【본=김동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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