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씻긴 공장을 살려보자〃추석휴가·보너스 반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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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물에 감긴 공장을 살리기위해 귀향의 설렘을 반납했다.
햇곡식 햇과일로 정성스런차례음식을 차리고 집떠난일손들이 너도나도 선물보따리를 들고 고향으로 향하는 추석명절.
남녀 종업원 4백50명은 녹슨 기계에 기름질을 하고 수출선적약속일을 지키기위해 추석휴가 보너스를 반납하고 기름때 절은 작업복을 갈아입었다.
지난l일 새벽 중랑천 범람으로 공장이 허리까지 침수, 28억원의 재산피해를 낸나전모방(경기도의정부시135)-.
방적기 6천4백추, 직포기1백10대가 몽땅 진흙을 뒤집어썼고 원사 30만야드가 물에젖어 기계를 닦아내고 원사를 씻어 말리려면 한달이상이 걸릴만큼 치명타를 입었다.
설상가상으로 여사원 기숙사에서 불이나 잠자던 2백3O여명은 속옷차림으로 빠져나왔고 추석을 앞두고 알뜰살뜰히 챙겨놓았던 귀향선물더미는 잿더미로 변했다.
『고향에 못가는 개인적인 섭섭함은 우리의 일터가 이 지경이 되 아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방직과 지도공 이명희양(23) 은 진흙으로 만신창이가된 실꾸러미를 깨끗한 물에 헹구며 『기계가 다시 움직이는 소리가 우리에겐 가장큰 추석 선물』 이라고 했다.
입사3년째의 이양은 부모님 가을속옷, 국교5년생인 남동생점퍼, 막내여동생의 원피스를 물살에 날려버렸고 중학교에다니는 여동생 공납금으로 모아둔 10만원을 기숙사 화재로 태워버렸다.
직포과 김광분양(20·경북상주군) 은 1백만원이 예금된 저금통장등 3개의 통장이 모두 불탔다. 피해를 보지않은 직원이 없었다.
그러나 어느 한사람도 이대로 물러설수 없었다.
업주가 부도를 내고 달아나 회사가 문을 닫고 뿔뿔이 흩어져야했던 절명의 위기에 그들 스스로 힘을 합쳐 회사를 살려낸 「오똑이」 들이기때문이었다.
나전모방의 이번 수재는 지난5월 부도사건에 이은 두번째 불행.
83년 수출6백50만달러, 국내판매 24억원의실적을 가진 건실한 중소기업이었으나 방계Y실업의 도산으로 연쇄영향을 받아 23억원의 부도를 냈었다.
금융기관의 자금지원이 중단됐고 수출창구가 막히고3개월의 임금·퇴직금이 밀렸다.
회사는 넘어지지않을수 없었다.
이때 허태명노조위원장(38)을 중심한 5백여 종업원들은 그동안의 임금·퇴직금을 모두 유보하고 흑자가 날때까기 최소한의 생활금만 받기로 결의하고 회사를 살리기로했다.
70명의 채권단은 종업원들의 회사재생의 열기에 감복, 3년간 일체의 부채상환을 유예했고 은행도 공매결정을 보류했다.
노조간부들은 수주를 위해 하루 25시간을 뛰었다.
7월들어 회사는 숨을 쉬기시작했다.
밀렸던 3억원의 체불임금이 지불됐고 월급도 10%를 올렸다.
한마음 한뜻이 되어 공장을 살려낸 맹렬종업원들의 결실은 9월말 결산 2천7백만원의 순이익이 예상됐고 추석보너스 1백%가 약속되었다.
예기치못했던 자연이준 시련.
1일새벽 『기계실에 물이 찬다』 는 비명소리와 함께 그들에겐 뼈아픈 제2의시련이 안겨진것이다.
경북 문경이 고향인 서태순양 (22·방적과) 은 또한번의 불행을 딛고 1년을 노력해 내년에 맞을 추석은 훨씬 알찬 선물이 준비될것이라며 활짝 웃었다.<도성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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