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가 분석한 예비군 총기 난사 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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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뉴시스]

예비군 훈련장 총기 난사 사건 이후 국방부는 경위 조사와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정치권에서도 예비군 훈련 제도에 대한 개선책을 강구 중이라 한다. 하지만 범행을 저지른 당사자의 심리 분석이 선행되지 않은 채 서둘러 내놓는 하드웨어 대책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총기를 난사하기에 이른 심리는 어떤 상태였는지, 또 이를 개인의 정신질환 차원으로 봐야 하는지, 아니면 사회 공동체의 노력이 필요한 부분은 없는지, 두루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범행을 저지르고 자살한 최모씨의 심리 상태를 전문가가 분석해본다.

외톨이는 왜 모르는 타인을 공격했나

최근 충격적인 묻지마 살인이 벌어졌다. 지난 13일 서울 내곡동 예비군 훈련장에서 최모(23·사망)씨가 사격 훈련 중 총기를 난사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5명의 사상자를 낸 이 사건과 관련한 언론 보도를 보면 최씨는 일종의 사회 부적응자였다. 고교 졸업 후 입대한 부대에서는 B급(중점관리) 관심사병이었고, 2013년 전역한 후 특별한 직업없이 어머니와 단 둘이 살았다. 막상 실생활에서는 웃통을 벗고 다닌다든가 고함을 지르는 통에 이웃의 민원을 받고 경찰이 출동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앓았지만 제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지난 3월 우울증을 앓던 저먼윙스 부기장의 여객기 고의 추락 사고 이후 또 이런 사건이 벌어지자 우울증 환자의 공격성이 큰 게 아니냐는 오해를 받는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볼 때 우울증과 공격성은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다. 오히려 전형적인 우울증은 삶의 에너지를 감소시켜 공격성도 줄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최씨가 벌인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우울증 때문에 공격적인 행동을 한 게 아니라 평소 겪은 좌절감이 공격성을 높였다고 보는 게 더 설득력이 있다. 이른바 좌절-공격 이론(frustration-aggression hypothesis)이다.

좌절-공격 이론을 말하기에 앞서 우선 공격성에 대해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하나는 반응적 특징의 공격성, 다시 말해 누가 나를 먼저 건드린 데 대해 반응하는 경우다. 길을 가다 이유없이 누군가에게 주먹세례를 받고 이에 맞대응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된다. 다른 하나는 공격성을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활용하는 목적지향적 공격성이다. 은행을 터는 무장 강도의 공격성이 대표적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구분이고, 실생활에서는 두 가지가 섞여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번 총기난사 사건처럼 누군가에게 당한 걸 앙갚음하려는 것도, 혹은 금품 탈취 같은 뚜렷한 목적도 없는데 왜 무고한 타인을 공격하고 마지막엔 자신을 향해 공격성을 표출했을까. 그 답이 위에 언급한 좌절-공격 이론에 있다. 과거 겪은 좌절감, 다시 말해 자신이 목표로 했던 것에 도달하지 못할 때 생기는 부정적 감정이 공격성을 증대시켜 공격 행위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물론 좌절 공격 역시 분노로 인해 타인에게 해를 입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반응적 공격성과 목적 지향적 공격성이 섞여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원하는대로 인생이 풀리지 않는 데 좌절한 나머지, 살인이라는 목표는 스스로 이룰 수 있다는 걸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타인에게 해를 입힌다는 이야기다.

좌절이 공격성을 일으킨다는 좌절-공격 이론으로 총기 난사 사건을 분석했지만 여기서 분명히 할 점은 좌절을 겪는다고 누구나 다 타인을 공격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최근 자신의 공격성에 놀라 정신과 클리닉을 찾는 사람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한 주부는 어느날 부엌에서 요리를 하다 칼을 들었는데 그 칼로 누군가를 찌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 한다. 그런 스스로의 모습이 너무나 공포스러워 병원을 찾았다. 에티켓 좋기로 소문난 한 사업가는 길을 걷다 모르는 여성에게 성폭력을 가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생겨 찾아오기도 했다. 평소엔 상상도 못했던 끔찍한 충동이 생기니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실제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대부분은 스트레스 등으로 뇌가 지쳐 일시적으로 생기는 공격성이기 때문이다.

심각한 범죄 행동까지 가는 경우는 지금까지 겪은 '좌절의 수준'이 극심한 자기 정체성의 결함과 관련있을 때다. 여기서 말하는 '좌절의 수준'이란 열심히 노력했으나 그런 노력도 헛되이 목적을 이루지 못해 좌절감을 더 심하게 느꼈다는 식의 일반적 상식과는 다르다. 오히려 거꾸로 누구나 수긍할만한 좌절의 경험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최씨도 언론에 드러난 것만 보면 학업이나 취직 등을 위해 특별히 더 노력한 흔적은 찾기 어렵다. 다만 좌절은 주관적인 경험이기에 사람의 성격적 특성, 갖고 있는 정신 병리, 그리고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다른 사람에겐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는 삶의 굴곡이 최씨 같은 사람들한테는 자기 존재감이 사라지는 듯한 좌절로 느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자기정체성, 즉 내가 어떤 사람인가는 타인과 자신이 속한 사회의 관계 속에서 인지하게 된다. ‘내가 이 사회시스템에서 어떤 가치를 가지는가’가 자기정체성의 핵심이다. 타인에게 상해를 입힘으로써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는다는 건 상식적으론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렇게라도 해서 자기자신을 입증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막상 그런 목적으로 상대를 공격하고 나면 살인이나 폭력이라는 자신의 목적이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이 역시 가치가 없다고 여기고는 외부를 향하던 공격성을 자신에게로 돌린다. 이런 류의 공격성이 자살로 끝나는 이유다.

지난 1월 이슬람 수니파의 극단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를 제발로 찾아간 김모(18)군도 비슷한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김군은 물론 타인에게 폭행이나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잔혹한 집단의 전사가 되겠다는 결정은 보통의 청소년이 벌일 법한 행동으로는 보기 어렵다. 일찌감치 학교도 그만 두고 방 안에 틀어박혀 있던 외톨이였다는 점이 적지 않게 작용했을 것이다. 심리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최근 저서『이슬람과 모더니티』에서 ‘이슬람 공동체의 기초는 평등주의를 지향하는 혁명적 우애"라며 "다만 젊은이가 가족이 주는 사회안전망에서 쫓겨났다고 느낄 때 극단적인 이슬람교가 통한다"고 했다. IS는 아마 김군을 IS로 끌어들이는 데 그가 겪은 좌절을 활용했을 것이다.

최씨와 김군 등 사회적 외톨이들이 불특정 다수나 스스로에게 향하는 공격성의 배경에는 '내가 누구인가'라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 우리 사회가 답을 해줄 수 없는 전반적인 철학적 결핍, 그리고 이들을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하는 시스템적 한계가 스며들어 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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