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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배명복의 직격 인터뷰

압둘하미트 빌리지 터키 지한통신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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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배명복
배명복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헌법상으로는 내각책임제이지만 실제로는 대통령중심제인 ‘이상한’ 나라가 있다. 한때 이슬람 민주주의의 모델 소리를 듣던 터키다. 지난해 8월 첫 직선제 선거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가 대통령이 되면서 실권은 총리실에서 대통령실로 넘어갔다. 에르도안은 다음 달 실시될 총선에서 개헌에 필요한 의석을 확보, 헌법적 모순을 해소할 생각이지만 뜻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지난달 말 국회와 서울대 강연을 위해 방한한 압둘하미트 빌리지(45) 지한통신 사장을 중앙일보로 초대해 터키의 정치 상황과 언론 탄압 실태에 대해 들었다. 터키 최대 일간지인 자만신문과 자매 관계에 있는 지한통신은 터키의 대표적인 민영 뉴스 통신사다.

빌리지 지한통신 사장은 “정부에 비판적인 터키 언론인들은 집권당의 열성 지지자들로부터 심한 협박을 받고 있다”며 “나 자신도 그런 협박에서 예외가 아니다”고 말했다. [신인섭 기자]

- 에르도안 대통령의 최근 지지율은.

 “여론조사 기관별로 차이는 있지만 대개 40% 선에서 왔다갔다 하고 있다. 요즘 터키의 여론조사 업체들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얼마 전 게지지란 업체의 여론조사에서 에르도안의 지지율이 처음으로 40% 아래로 떨어진 걸로 나타나자 갑자기 이 회사에 대한 세무조사가 실시됐다. 사무실이 압수수색을 당하고 업체 대표는 집권당인 정의개발당(AKP)의 열성 지지자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 지지율이 예전 같지 않은 모양이다.

 “최근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에르도안에 대한 절대적 지지층과 절대적 반대층의 비율이 처음으로 역전된 걸로 나타났다. 예전에는 35%가 무조건적 지지자들이고, 25%는 무조건 반대하는 사람들이었는데 그 비율이 서로 바뀐 것이다. 특히 2013년 말 터진 비리 스캔들 이후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후퇴, 경제 상황의 악화, 호화 대통령궁 건립, 집권당 내 파벌싸움 등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본다.”

 - 그럼에도 에르도안은 선거 때마다 매번 이기고 있지 않은가.

 “정치학자들의 흥미로운 연구 주제감이다. 에르도안은 2003년 터키의 경제위기가 한창일 때 집권해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그 덕에 민심을 얻었다. 그때 쌓은 믿음이 지금도 일부 국민 사이에서는 확고하다. 터키를 더 잘 이끌 수 있다는 믿음을 야당이 못 주고 있는 것도 문제다. 또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에르도안이 뛰어난 ‘정치 공학자’라는 사실이다. 국민 정서를 기가 막히게 잘 읽고 조종하기 때문에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교묘하게 잘 빠져나온다.”

 - 에르도안이 잘한 것도 있지 않나.

 “ 에르도안은 터키에 필요한 개혁을 했다. 유럽연합(EU) 가입 협상을 시작했고, 민주화에서도 큰 진전을 이룩했다. 그의 집권 기간 중 터키의 국내총생산(GDP)은 몇 배가 늘었고, 국제적 위상도 올라갔다. 하지만 2년 전부터 그는 자기 손으로 만든 작품을 자기 손으로 망가뜨리고 있다.”

 - 왜 그렇다고 보나. ‘21세기의 술탄’을 꿈꾸는 것인가.

 “에르도안의 말에서는 힌트를 찾기 힘들다. 그의 최측근 인사들이 소셜 미디어에 올리는 글을 보면 그를 ‘칼리프(이슬람 국가의 최고 지도자)’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터키 국민 가운데는 오스만제국을 그리워하고, 그 시대에 대한 환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술탄이 다스리는 오스만제국의 부활은 헛된 꿈이다.”

 - 에르도안은 불리할 때마다 외부 세력에 의한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

 “터키뿐만 아니라 중동과 아랍권에서는 음모론이 늘 인기가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에르도안 자신이 음모론의 피해자였다. 그의 정적(政敵)들은 에르도안을 미국과 이스라엘이 심은 ‘트로이의 목마’라고 했다. 지금은 에르도안이 똑같은 방식을 쓰고 있다. 자기 생각과 다른 주장을 하면 ‘외세의 앞잡이’라고 비난한다. 2013년 이스탄불 탁심광장에서 시위 사태가 일어나자 그는 바로 외부 세력의 개입 탓으로 돌렸다. 부패 정치인들에 대한 검찰 수사도 국제적인 쿠데타 음모라고 비난했다.”

 - 그걸 믿는 사람들이 있나.

 “에르도안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고, 박수를 치는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다. 에르도안에게는 마법사 같은 면이 있다.”

 - 터키 민주주의의 후퇴를 보면서 이슬람과 민주주의는 양립하기 어려운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동의하는가.

 “지난 2년간 벌어진 일들을 보면 그런 의문을 제기할 만하다. 하지만 이슬람과 민주주의가 양립할 수 없다는 시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슬람은 민주주의와 무관하다. 과거 에르도안이 추진한 정책들은 터키와 이슬람 세계, 서구의 이익에 부합했다. 지금 에르도안은 그 길에서 잠시 벗어나 있을 뿐이다. 일종의 예외적 시기다.”

 - 민주주의의 모범이라고 할 만한 나라 중에 이슬람 국가가 없는 건 사실 아닌가.

 “에르도안이 잘나가던 시기에 그는 이슬람주의적인 정치인이 아니었다. 그냥 보수적인 정치인이었다. 터키 국민이 에르도안을 지지했던 이유 중 하나도 그가 정치적 이슬람주의에서 벗어나 보수적 민주주의를 표방했기 때문이다. 터키에는 아직도 이 노선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하지만 지금 에르도안은 이슬람주의적인 노선으로 복귀했다. 이슬람권에서 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예가 없는 것은 맞지만 그래도 가능성이 제일 큰 나라는 터키다. 지금은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나는 터키 민주주의의 장래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 터키 언론이 처한 위기의 본질은 무엇인가.

 “터키 언론은 복합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제일 큰 문제는 정권의 탄압이다. 과거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된 정권이 언론에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게 그때와는 다른 점이다. 기자들을 구금하고, 트위터와 유튜브를 차단하고, 공기업들이 독립 언론에 대한 광고를 끊고, 비판적 언론에는 세무조사를 하고, 친(親)정부적 언론을 노골적으로 지원하고, 독자 노선을 걷는 언론사에 정치인들이 수시로 전화를 해서 압력을 가하고, 비판적인 칼럼니스트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등 수많은 문제가 있다.”

 - 언론 자체의 문제는 없나.

 “물론 있다. 두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동안 터키 언론은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인식되지 못했다. 언론 본연의 역할보다는 이익집단의 대변자라는 인식이 강했다. 이로 인해 신뢰의 위기를 겪고 있다. 여론조사를 봐도 언론인에 대한 신뢰도는 매우 낮다. 군인이나 정치인들보다 낮게 나타나기도 한다. 또 하나는 언론의 소유권과 관련된 문제다. 언론을 불신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다. 최근 15년간 터키 국민에게 언론은 성공한 기업인이 인수하거나 창간해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해 활용하는 도구로 인식돼 왔다.”

 - 언론도 기업인 이상 소유주는 있기 마련이다.

 “물론이다. 그러나 터키의 경우 소유권과 편집권의 관계에 많은 문제가 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미디어의 소유권은 누군가가 갖고 있지만 사주와 편집인 사이에는 벽이 존재한다. 터키에서는 소유권과 편집권이 혼재돼 있다. 그로 인해 언론의 이미지가 실추돼 있다. 이는 언론 탄압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상쇄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터키 최대 재벌 중 하나인 도안그룹이 소유한 언론사에 무려 2조원가량의 벌금이 부과됐지만 국민의 반발은 거의 없었다. 언론이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일종의 자업자득이다.”

 - 자만신문 같은 독립적 매체에는 에르도안을 비판하는 보도나 칼럼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실리고 있다. 에르도안은 이를 근거로 터키에 언론 자유가 있다고 주장하는데.

 “기자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대가를 치르며 하루하루 쓰고 있는 것이다. 언론의 자유에는 쓸 수 있는 자유뿐만 아니라 쓴 이후에 독립적이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자유가 포함된다. 체포됐던 자만신문의 편집국장인 에크렘 두만르는 불구속으로 풀려났지만 여전히 재판 절차가 진행 중이다. 한 여기자는 트위터에 ‘부패 수사를 종결시킨 사람들을 잊지 말라’는 글을 올렸다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 기자가 속한 매체의 사주에게 에르도안이 전화해 불같이 화를 내자 그 사주는 전화에 대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럼에도 에르도안은 터키는 전 세계에서 언론이 가장 자유로운 나라라고 떠들고 있다. 기자들을 약올리려고 일부러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아흐메트 다우토을루 총리가 외교장관이었을 때 기자회견에서 우리 회사 기자가 질문을 했다. 누구나 물어봄 직한 원론적 질문이었다. 그러자 다우토을루는 ‘당신이 이런 질문을 하고 무사히 귀가할 수 있다면 터키의 언론이 자유롭다는 증거’라고 했다. 그 일 이후 그 기자는 외교부 출입이 금지됐다. 터키에 언론 자유가 있다고 하는 것은 블랙 유머다.”

 - 혹시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인의 뒷조사를 하거나 개인적 약점을 캐는 일은 없나.

 “당연히 있다. 모든 비판적인 언론인들에게는 AKP의 열성 지지자들로부터 심한 협박이 들어오고 있다. 나도 협박을 받고 있다. ‘곧 집어넣어 버릴 거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앞잡이’ ‘배신자’ ‘바이러스’ 등의 표현을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다.”

 - 터키의 언론 매체 중 친(親)정부 성향의 언론이 어느 정도나 되나.

 “70%는 되는 것 같다. 공영방송의 경우 전에도 정부의 입김이 작용하긴 했지만 정부나 집권당의 선전 도구로 활용하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실상 정부나 집권당의 하부 조직으로 전락했다. 지난해 대선 직전 열흘간 대선 후보 3명에게 공영방송이 할애한 시간을 비교했더니 에르도안 500분, 야권 단일후보 3분, 제3의 후보 45초라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대에 언론을 통제한다는 게 가능한 발상인가.

 “에르도안이 트위터나 유튜브를 차단했지만 사람들은 이를 뚫는 방법을 금방 찾아냈다. 요즘 시대에 정보의 흐름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꼴이다. 언론 탄압으로 에르도안은 전 세계에 터키가 북한이나 중국과 같은 나라라는 이미지만 심어줬다.”

 - 칼럼을 쓰면서 두려움을 느낀 적은 없나.

 “나도 인간이니까 ‘만일에…’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족과 생활에 대한 걱정 때문에 목소리를 자제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옳다고 믿는 것을 쓰는 용감한 기자들이 있고, 이것을 보면서 다른 언론인들도 용기를 얻고 있다. 이미 민주주의를 경험한 터키 같은 나라에서 ‘철(鐵)의 장막’을 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비용은 커지고 불화만 깊어진다. 안타깝게도 일부 언론인이 집권 세력의 대변자가 되는 걸 지켜보는 건 슬픈 일이다.”

글=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사진=신인섭 기자

빌리지 사장은 …

1970년 터키 에르주룸 출생. 93년 보스포루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이스탄불대 경제학 석사. 자만신문 기자, 국제부장. 2002~2008년 자만신문 편집국장. 2008년 지한통신 사장. 자만신문과 영자신문 ‘Today’s Zaman’ 고정 칼럼니스트. 기자작가재단 및 세계신문협회(WAN) 회원.

인터뷰 후기
1년 전 소마 탄광 참사는 일종의 대형 ‘자살사건’

개인적으로 지난해 5월 이스탄불에서 빌리지 사장을 만난 적이 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한 달쯤 지났을 때였고, 터키에서 소마 탄광 폭발 참사가 발생한 직후였다. 둘 다 전형적인 인재(人災)였고, 희생자 숫자도 304명과 301명으로 거의 비슷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참사 1년’으로 시작됐다.

 빌리지 사장은 “소마 참사 이후에도 다른 탄광 사고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며 “터키는 소마 참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모든 책임을 해당 기업에 떠넘겼을 뿐 책임지고 물러난 공직자는 한 명도 없었다고 개탄했다. 소마 참사는 부패하고 무책임한 정부와 이익만 따지는 기업이 조장한 대형 ‘자살사건’이었다고 그는 진단했다.

 그는 터키의 언론 자유 수준을 10점 만점 기준으로 평가해 달라는 주문에 주저하지 않고 2.5점이라고 대답했다. 매우 심각한 상황이란 진단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총리였을 때 곤혹스러운 질문을 한 여기자에게 ‘당신 아직도 거기서 일하냐’며 대놓고 면박을 준 일화는 터키의 언론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며 “언론 탄압과 신뢰의 추락으로 터키 언론은 이중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닮지 않아도 좋을 것까지 닮아 가는 한국과 터키는 형제 국가가 맞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