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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묻고 박한식 답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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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영희
김영희 기자 중앙일보 고문
정용수 기자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오종택
오종택 기자 중앙일보 차장
지난주 북한을 방문하고 서울에 들른 재미 북한 전문가인 박한식 미국 조지아 주립대 교수는 “남한 쪽에서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남북 정부 간 대화는 당분간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우리 함정에 대한 조준사격 위협,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함대함 미사일(KN-01) 발사. 지난 8일과 9일 북한은 군사적 긴장을 대거 고조시켰다. 정부가 민간단체들의 대북 비료 지원과 6·15선언 15주년 공동행사를 서울에서 하도록 허가한 직후다. 대북경제지원과 민간교류를 차단하는 5·24조치 5년을 앞두고 정부가 해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찬물을 끼얹는 꼴이다. 북한의 속내는 뭘까. 요즘 북한 내부 분위기는 어떨까. 지난주(5~9일) 1990년 이래 53번째 평양을 다녀온 박한식(76) 미국 조지아대 석좌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영희=지금 평양의 분위기는 어떻던가요?

박한식=눈에 띄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1년 만에 평양에 갔는데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군 관련 활동을 굉장히 부각하더군요. 김정은의 호칭도 원수로 격상되었다고 해요. 제가 만난 사람들도, 주변 사람들도 모두 공통된 모습이었습니다. 한국이 3월부터 4월까지 한·미 연합훈련을 했는데요. 자신들이 그 기간에 군사적인 조치를 취할 수도 있었지만 그냥 넘겼다고 하더군요. 그건 단순한 허풍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북한의 관심은 군사에 쏠린 것 같았습니다.

 김=국가정보원이 최근 10여 명의 고위장성이 처형됐다고 했는데 공포 분위기가 느껴지던가요?

 박=2013년 12월 김정은이 고모부인 장성택을 처형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어느 누구도 체제에 반하는 행동을 할 경우 그런 운명을 맞는다는 생각을 하겠지요.

 김=반면 김정은 시대 들어와 외부와 소통하려는 움직임도 많이 보이지 않습니까?

 박=자신들의 입장을 외부에 전달하려는 것이지요. 제가 평양에 머무는 동안 호텔에서 미국 CNN 취재진을 만났는데 ‘왜 왔느냐’고 물었더니 ‘자신들도 모른다’고 대답하더군요. 이전에는 언론들이 취재를 하겠다고 하면 북한이 허가를 한 뒤에야 평양에 갈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북한에서 CNN을 초청한 것이지요.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인권에 대한 논란이 많으니까 개인보다 국가가 우선한다는 입장을 외부에 알리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요.

 김=북한에 장마당을 통한 자본주의 요소가 빠르게 도입되고 있다는 평가는 얼마나 정확합니까?

 박=평양에 며칠 있으면서 속속들이 모든 걸 알 수는 없죠. 자본주의 경제처럼 보이는 것들은 어느 때보다 많아졌습니다. 길에서 장사하는 사람도 늘었고, 공원에서도 그렇고요. 그런데 잘 봐야 합니다. 평양에 모란봉이라는 곳이 있는데요. 산책을 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입장권을 받아요. 별로 비싸지는 않지만 북한에서 놀이공원에 돈을 내고 들어간다는 건 의미 있는 변화라고 봅니다. ‘누가 운영하느냐’고 물었더니 ‘국가, 결국은 평양시 정부에서 한다’고 했어요. 그러니 자본주의와는 거리가 있는 거죠. 시 예산을 충당하는 차원인 겁니다. 자본주의나 개인주의가 아닌 것이죠.

 김=북한이 올해 동계훈련도 강하게 하고, 최근엔 SLBM 발사 실험도 했는데 어떻게 봐야 합니까?

 박=평양은 김정은 절대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북한 전체가 김정은화돼 가고 있다는 느낌이었어요. TV를 틀었더니 김정은과 관련된 노래 일색이었습니다. 노랫말의 내용을 보니 과거와는 달리 주체사상이나 선군사상이 미약했어요. 선군사상은 철학적인 부분이 있는데 ‘무조건 부숴야 한다’는 군사주의 일색이었어요. 해외동포로서 잘못하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까 굉장히 염려하면서 나왔어요.

 김=전쟁이 일어나면 남쪽이 상당한 피해를 보겠지만 북한은 체제 자체가 붕괴된다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요.

 박=본인들도 잘 알 겁니다. 그런데 김정은이 하겠다고 하면 누가 말릴 수 있겠어요.

 김=결국 SLBM은 핵무기 사용을 전제한 거 아닙니까? 뭘 하자는 걸까요?

 박=핵심적인 질문입니다. 북한이 국방과 안보를 가지고 강경하게 나오는 것은 핵무기에 관한 자기들의 입장이 있기 때문이죠.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북한은 핵무기를 양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한국이나 미국에 경제적 지원을 요구하고 그런 흥정이 성사되면 지금 가지고 있는 핵무기를 포기할 거란 얘기입니다.

 김=어떤 근거에서 그렇게 말합니까?

 박=오랫동안 북한을 들여다본 사람의 감입니다. 북한은 자신들이 핵국가라고 하지 않습니까. 핵 기술이 있고, 원료가 있고, 시설이 있으니 필요하면 언제든지 중단했던 핵프로그램을 재개할 수 있다는 자신의 반영 아닌가 싶습니다.

 김=어떤 채널에서 흥정이 이뤄질까요?

 박=북·미 간에 이뤄지지 않을까요. 미국에 직접 받아낼 수 있는 게 국교정상화니까요. 북·미 협상에서 핵무기를 폐기하겠다고 나올 것 같습니다. 6자회담의 위상은 올라가지 않을 것 같아요.

 김=그동안 뉴욕 채널이 가동됐었습니다.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와 협상을 하고 싶어 하는데 북한이 2·29 합의를 파기하면서 미국이 등을 돌렸습니다. 북·미 대화가 재개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떤 조건이면 가능할까요?

 박=미국의 분위기가 돌아서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단적인 예가 있는데요. 지난해 제가 ‘남·북·미 1.5 트랙 반관 반민 대화’를 추진하려고 했지만 미국에서 북한 인사들에게 비자 발급을 거부해 회의가 취소됐어요. 그런데 최근 인권대사 로버트 킹이 제게 전화를 해 제가 추진하던 회의, 지금도 유효하냐고 물어요. 그래서 비자만 준다면 가능할 것이라고 했죠. 미 정부가 북한 사람들의 비자를 주지 않으면 다른 데서 하는 방법밖에 없다고도 했더니 다시 연락이 왔는데 비자는 긍정적으로 검토될 수 있으니 추진하라고 하더군요. 제3국에서 하지 말고 조지아 주립대에서 하라는 것이었어요. 그걸 보면 북·미 대화를 위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볼 수 있지요.

 김=올해가 광복 70주년인데요. 남북관계 개선과 관련한 북한의 입장은 뭔가요?

 박=민간인의 교류는 마다할 게 없는데 남쪽 정부와의 대화는 보류를 할 것 같아요. 드레스덴 선언에 대한 불만도 있고, 북한을 민주주의 제도화해서 흡수하려는 남한과 무슨 대화를 하느냐는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정책이 뭐냐, 무슨 로드맵이 있느냐고 따지더라고요. 그런 관점에서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에 대한 불만도 상당해요.

 김=통일을 준비하겠다는 것인데 왜 불만입니까?

 박=북한 사람들은 통일 준비를 북한 붕괴준비라고 인식하고 있으니 문제지요. 드레스덴 선언도 그렇고 독일 통일도 그들은 흡수통일로 봐요.

 김=한국 정부와는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말이죠?

 박=고위급 당국자회담도 정상회담도 흡수통일을 추구하는 남쪽과 어떻게 하느냐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국회회담에는 관심이 있는 것 같아요.

 김=결론적으로 남북 정부 간 대화는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고 보시는군요.

 박=남한 쪽에서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어렵다고 봅니다.

 김=박 교수는 종북은 아니지만 친북인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한을 잘 아는 전문가 입장에서 지금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뭘 해야 하고,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박=북한 사람들은 민족이라는 단어를 아주 중요시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과거사를 부정하는 일본의 아베 정권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어요. 북한도 거부하기 어려울 겁니다. 중국도 그걸 원하고 있으니 중국이나 북한과 공동으로 성토대회라고 할까요, 규탄을 하거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북한 사람들도 내가 그걸 성사시킬 수 없느냐고 합디다.

 김=남북한과 중국이 일본을 성토하는 공동성명 같은 걸 내봐야 아베의 일본은 꿈쩍도 않고 한·일 관계만 더 악화될 겁니다. 화제를 바꿔서 김정은이 러시아 전승기념일 행사에 가겠다고 했다가 왜 안 갔습니까?

 박=평양에 들어가기 전과 후 중국에서 학자들과 그것에 대한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들은 김정은이 중국을 의식해서 가지 않았다는 생각이었어요. 중국 없이는 살 길이 없는데 지도자가 된 뒤 첫 방문지가 중국 아닌 러시아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거죠. 그런데 평양에 가 보니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았어요. 북한 사람들은 영도자와 지도자를 구분합니다. 영도자는 수령이고 지도자는 통치자라고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봐요. 외국 사람들이 북한을 보려면 한국말을 이해해야 하는데요. 북한에선 김정은을 지도자가 아닌 영도자로 여기고 있습니다. 할아버지(김일성), 아버지(김정일)도 영도자였지 지도자가 아니었죠. 그런데 김정은이 모스크바에 가면 지도자 자리로 격하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주변에서 말린 것 아니겠어요?

 김=그렇다면 시진핑도 영도자보다 낮은 지도자인데요.

 박=중국은 좀 다르게 봐야 합니다. 중국은 김정은이 갈 경우 영도자의 냄새를 풍겨줄 것입니다. 중국은 덩샤오핑을 영도자로 여기고 있으니 그런 문화를 잘 알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을 동원해 열렬히 환영하는 방식으로 김정은이 영도자 대접을 받는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 걸로 봐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에 갔을 때도 그랬지요.

정리=정용수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박한식 석좌교수는 …

북·미 관계에 정통한 미국 조지아 주립대 석좌교수. 2004년 11월 북한과 미국의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한 ‘트랙Ⅱ 대화’를 개최하는 등 50여 차례 북한을 드나들며 북·미 간 가교 역할을 했다. 현재 조지아대 부설 세계문화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조지아대는 2002년 그를 종신교수로 선정한 데 이어 지난해엔 박 교수의 이름을 따 ‘박한식 평화연구 석좌교수(Han S. Park a chair of Peace Studies)’ 직책을 신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