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치에 휘둘리지 않는 통일부 장관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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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부임한 지 1년5개월 만에 물러났다.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도 겸해 우리 외교안보의 조타수였던 그의 '성적표'에 대해선 여러 평가가 있을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단독 면담 등 남북 교류에 애쓴 공로가 인정되는 반면, 북측에 끌려다니기만 했다는 비판도 뒤따른다.

정 장관은 취임 이후 '북한이 듣기 싫어하는 소리를 내거나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남북대화도 안 되고, 평화도 깨진다'는 단선 논리로 일관했다. 그의 취임 후 북한은 김일성 조문 불허와 대규모 탈북 수용 등을 걸어 남측 당국과의 대화를 거부했다. 그러자 그는 "북이 이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해 좀 더 생각했어야 했다"는 등 환심 사기용 발언을 반복했다. '인권이 중요하다'는 명분을 내걸어 비전향 장기수에는 온갖 관심과 편의를 제공하면서, 정작 납북자나 국군포로에 대해선 '먼산 쳐다보는' 이중성을 드러냈다. '북한과 미국에 할 말은 하겠다'면서도 미국에 대해서만 각을 세웠다.

이런 정책은 남남 갈등을 깊게 하고 한.미 갈등을 부추기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특히 북한은 이런 우리의 저자세 대북정책을 십분 활용, 경제적 실리만 챙기면서 남측 사회의 혼란 조장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신년 공동사설에서도 '남한 내 반 보수연합 결성'과 주한미군 철수 투쟁을 선동했다. 정부가 '정동영식 북한 눈치보기 노선'을 계속 견지하는 한 남북관계의 실질적 진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우리 내부의 혼란만 심화될 뿐이다.

정 장관은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통일장관직을 대권을 향한 하나의 발판으로 생각하고 지나치게 실적을 의식한 정책을 펴온 것은 아닌지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후임 장관은 정치 논리에 함몰되지 않고, 국익 차원에서 대북정책을 입안.집행할 수 있는 인물이 기용돼야 한다. 특히 북한뿐 아니라 주변국들과의 관계에서 보다 폭넓고 전략적인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 눈치만 봐서는 우리가 고립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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