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에도 앙코르 공연 '늙은 연극' 두 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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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해가 저무는 이맘때면 새해엔 무언가 새롭게 시작하고픈 게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여기 두 연극, 새롭기는커녕 칙칙하기만 하다.
올해 하던 것을 내년에도 계속 한단다.
게다가 궁상스런 노인네들 얘기다.
하나가 60 넘은 싱글 남녀가 눈 맞아 정분나는 얘기라면
나머지 하나는 한물 갈대로 간 퇴물 창녀의 신세 타령이다.
그런데 조명이 꺼지고 극장문을 나설 때엔 가슴 한 곳이 헛헛해짐을 느낀다.
삶이란 죽음이란 그리고 사랑이란 무엇인지 묻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늙은 부부 이야기

늙은 부부 이야기

대발이 아버지로 친숙한 탤런트 이순재씨. 그가 빨간 넥타이에 번쩍거리는 백구두를 신고 나온다. 건들거리는 '날라리 영감'로 등장해 화제가 된 '늙은 부부 이야기'(연출 위성신)의 줄거리는 이렇다.

'동두천의 바람둥이'로 통하는 박동만은 20년 전 아내와 사별했는데 셋방 주인인 욕쟁이 할머니 이점순과 만난다. 30년 전 남편과 사별한 이점순은 국밥집을 하며 억척스레 살아가는 할머니. 할머니는 겉으론 퉁퉁거리며 할아버지에게 쌀쌀맞게 대한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가슴에 켜켜이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자식들도 실상 그들을 외면한다. 사소한 일로 투닥거리면서 조금씩 사랑을 쌓아가던 두 사람의 애틋한 사랑은 결국 할머니가 불치병에 걸리면서 안타까운 이별로 마무리 되는데….

연기생활 49년 만에 처음으로 소극장 무대에 선 이순재씨는 "수채화 같은 연극이다. 비극성을 강조하지 않으면서 노년층의 심리적 상황을 잔잔하게 잘 그려냈다. 극장 규모가 작기 때문에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10월 말부터 시작된 연극, 두달 남짓한 기간 동안 출연진 중 한명인 예수정씨에겐 많은 일이 벌어졌다. 어머니인 원로 탤런트 정애란씨가 11월 10일 돌아가시는 아픔을 겪었다. 반면 연극계의 가장 권위있다는 히서연극상 '올해의 연극인'상을 수상하는 기쁨도 있었다. "연극이 아닌 마치 내 삶처럼 다가온다"는 게 그녀의 말이다. 내년 2월5일까지 대학로 소극장 축제에서 공연된다. 02-741-3934

양희경의
늙은 창녀의 노래

양희경의 늙은 창녀의 노래

'몸 파는 여자'는 영화든 소설이든 종종 예술의 소재로 쓰였다. 그런데 이 작품의 주인공은 그냥 창녀가 아니다. 인생의 완벽한 밑바닥까지 경험한 늙은 창녀다. '꽃값'이라고 부르는 하루저녁 몸값 5000원에 손님을 맞는 그야말로 '바닥 인생'을 사는 사람이다.

연극 '늙은 창녀의 노래'는 작가 송기원의 동명 단편소설을 모노드라마로 바꾼 작품이다. 작가는 90년대 초 한 여성잡지에 '작가 송기원의 뒷골목 기행'이라는 기행문을 연재했다. 그는 등짐장수, 하급선원, 술집작부 등 소위 '버림받은 인생'을 만났다. 그리고 작가는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인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됐다고 한다.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건 역시 양희경이라는 배우의 열연 덕분이다. 그녀는 공연 뒤 "삶이 힘들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사람들에게 이 작품을 권해 달라"고 말한다.

PMC 프로덕션 '여배우 시리즈'의 다섯번째 작품인 '늙은 창녀의 노래'는 내년부턴 무대를 대학로 소극장 학전블루로 옮긴다. 연극 저널리스트 김수미씨는 "현재 공연하고 있는 청담 우림 씨어터는 다소 무대가 넓어 혼자서 전체 극을 책임지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소극장으로 바뀌는 만큼 10년 전에 주었던 감동을 다시 전해 주리라 기대된다"고 말한다.02-762-9190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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