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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년시론

과학자 이전에 인간이 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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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내가 황우석이라는 이름을 신문 지상을 통하지 않고서 처음 화제에 올렸던 것은 약 2년 전이었다. 정초에 모 대학의 중견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옛 제자가 세배차 내방했을 때 몹시 격한 어조로 황금박쥐를 비난하는 하소연을 들으면서 황금박쥐라는 별명을 처음 알게 되었고, 소위 황금박쥐 모임이 이공계 각 분야에 군림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 황금박쥐의 우두머리가 황우석 교수라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황금박쥐로 불리는 세 사람은 현직 장.차관급 정부 요직에 있는 분들인데 왜 거기에 서울대 수의과대 황우석 교수가 끼여 있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얼마 후 황금박쥐의 세 번째인 박기영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의 이름이 공동저자로 사이언스의 논문에 실려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것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일이라는 생각에 황 교수에 대한 관심을 접고 말았던 것이다.

황금박쥐 세 사람이 이공계 중진인데 그들이 코페르니쿠스를 모르고 갈릴레오를, 그리고 베살리우스를 모를 리 없지 않은가? 17세기의 과학혁명을 거쳐 오늘에 이르는 근대과학의 순교자적 유래를 그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그렇지 않고서는 과학의 성실성, 그리고 그 존엄성에 대한 경외심이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차단될 수는 없는 일이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불후의 명작에서 사회학의 거성 막스 베버는 근세의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종교의 직업윤리가 이룬 중요한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유물사관이 팽배했던 그 시기에 이미 근세 시민사회의 발전을 경제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프로테스탄트의 신앙에 근거를 둔 시대정신으로 설명하고, 또 종교의 교리 속에서 시대를 지배할 경제윤리를 적확하게 읽어낸 베버의 한 세기 앞을 내다본 선견지명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찰스 다윈의 열렬한 전도사였던 토머스 헉슬리가 '과학자(Scientist)'라는 칭호를 거부하고 '과학인(a man of Science)'이라고 불러달라고 단호하게 주장했던 일, '세계문화사(The Outline of History)'의 저자로 유명한 허버트 웰스가 1946년 서거할 때까지 '과학자'라는 단어를 거부하고 '과학인'이라는 표현이 옳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사실에서 소위 '과학의 인간성'에 대한 그들의 간절한 염원을 엿볼 수 있다. '과학자'라는 말은 지금부터 100년 전만 하더라도 낯선 말이었으며 그때는 '자연철학자(Natural Philosopher)'로 통용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72년 유엔 세계인간환경회의를 주도했던 르네 듀보가 이제는 '사물의 과학(Science of Things)'이 아니라 '인간성의 과학(Science of Humanity)'을 천착해야 할 때라고 기치를 높이 들었던 일은 이 한 해를 넘기면서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야 할 뜻깊은 명언이라고 생각된다.

평생 나의 정신적 스승으로 사사했었던 함석헌 선생님은 당신이 80세를 맞으신 어느 날 노자의 강의를 하시다 유언으로 한마디 남긴다면 '기다려라'라는 말이 될 것이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참고 기다리는 선함'을 노래한 어느 시인과 같이 황우석 신드롬으로 나락에 떨어졌던 우리의 아픈 마음을 달래며 결코 무관심한 수동성이 아닌 타자에 대한 가장 고귀한 적극적인 관심으로서의 기다림으로 새해를 맞이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김용준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