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유도(유도)를 영어로는 「주도」라고 한다. 일본어 발음 그대로다.
이설도 있지만 유도의 시조는 일본으로 보는 것이 정세이다.
경기용어들도 모두 일본어 발음을 따랐다.
LA올림픽 유도 경기장의 전자우막이 표시된 「케이코쿠」「추이」「시도」 라는 영문자는 모두 「경고」「왕의」 「지도」의 일본어 발음들이다.
일본기록을 보면 고대의 「스모」(상박)를 유도의 원류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의 씨름같은 경기다.
그러나 유도가 일본에서 크게 번진 것은 중세말기 전란시대였다.
제국의 군웅이 할거하면서 무예가 인재 등용의 요건이 되었다.
원래는 유술(유술)로 불린 이맨손(도수) 격투가 무「예」의 경지에, 다시 유「도」가 된것은 일본 특유의 문학적 배경에서 연유한다.
이른바 명치유신(19세기)무렵 외국문물에 몰두하면서 그전 무사시대의 사유문화를 내버리다시피 했었다.
그 결과 일본인들은 심약하고 신체마저 나약해졌다.
이때 일본의 선각자들이 동경에 희도관을 세우고 유도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신체의 단련 뿐아니라 정신수양까지도 겸한, 이를테면 체육·호신·수심의 효과를 얻는 국민운동의 하나였다.
유술이 유도가 된 것이다.
특히 청일전쟁(1894∼95년)과 노일전쟁(1904∼5년)중 일본에선 국민 사기진작을 위한 무도진흥의 소리가 높았다.
그 뒤로 유도는 일본 국민 사기부터 상급학교에 이르기까지 필수과목으로 채택되었다.
이것이 세계의 보편적인 스포츠로 채택된 것은 1948년 유럽 유도연맹이 결성되면서부터 였다.
국제유도연맹(IJF)은 1951년 결성되었다.
지금 그 가맹국은 세계 70여개국.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된 것은 1964년 동경 올림픽때. 이번 LA올림픽의 라이트급 유도에서 우리 선수 안병근 군이 금메달을 따낸 것은 그 어느 종목보다도 통쾌감을 준다.
바로 유도의 본고장인 일본의 강호 「나까니시」(중서영민)를 누르고 결승에 진출, 끝내 챔피언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에도 전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신나시대의 화낭들은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심신을 단련했었다.
LA올림픽 유도장에서 이름을 남긴 선수들이야말로 오늘에 다시 꽃핀 화낭도 들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