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라운지] "크리스마스 대신 하누카 지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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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이스라엘대사 부인 미할 카스피 여사가 하누카 명절 음식인 '라크스(Latkes)'를 보여주고 있다.

이갈 카스피 주한 이스라엘 대사가 27일 서울 한남동 대사관저에서 촛불을 가리키며 하누카 축제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김태성기자

27일 저녁 서울 한남동 주한 이스라엘 대사 관저. 창 밖에 어둠이 짙게 깔리자 이갈 카스피(55) 이스라엘 대사가 "시작합시다"라고 말했다. 그러자'키파'라는 모자를 쓴 랍비 아브로홈 호로비츠가 응접실 벽난로 옆에서 히브리어로 축도를 시작했다."우주의 전지전능하신 신이 하누카를 축하한다. 아멘."축도를 마친 랍비는 8개의 양초가 꽂힌 촛대에 불을 붙였다. 이어 카스피 대사 부부가 히브리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60여 명의 손님들도 따라불렀다. 하누카(Hanuka)축제가 시작된 것이다.

하누카는 유대력인 키슬레브월(양력 11~12월께) 25일에 시작해서 8일간 이어지는 '성전 봉헌'축제다. 8개의 촛불에 매일 하나씩 불을 밝혀간다고 해서'빛의 축제'라고도 한다. 이스라엘은 물론 전세계에 거주하는 유대인들 90%는 크리스마스 대신 하누카 축제를 즐긴다. 카스피 대사의 설명에 따르면 하누카의 기원은 기원 전 2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스라엘은 그리스에 의해 점령당한 상태였다. 그리스인들은 유대인들에게 제우스 같은 그리스신을 숭배할 것을 강요하며 탄압했다.

기원 전 165년 유대인 반란을 이끈 유다의 지도자 마카비가 그리스를 물리치고 예루살렘을 탈환했다. 이때 유대인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예루살렘 성전에 불을 밝히고 신에게 감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성전에는 촛불이 없었다. 그 때 누군가 제단의 촛대에 단 하루 분의 올리브유를 바쳤다. 그런데 불꽃은 여드레 동안 꺼지지 않았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유대인들이 하누카를 귀히 여기는 배경이다. 그러나 요즘 유대인들은 하누카를 연말 명절 기분으로 즐긴다. 카스피 대사는 하누카 정서에 대해"우리는 고통을 당했으나 승리를 거뒀다. 먹고 명절을 즐기자"는 것이라며 웃었다.

불꽃과 올리브유에 얽힌 전설 때문에 하누카 축제에는 기름이 많이 들어간 음식을 먹는다. 대사 부인인 미할 카스피 여사는 '라크스(Latkes)'와 '서스가니욧(Susganiyot)'이 대표적인 하누카 음식이라고 했다. 한국의 전병과 비슷한 라크스는 감자와 계란으로 만든 동그란 팬케이크다. 서스가니욧은 구멍이 없는 도넛으로 기름에 튀겨 만든다.

이날 하누카 행사에는 알렉산더 버시바우 미국 대사 내외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버시바우 대사 부부는 모두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할아버지가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이민 간 유대인 집안이다.

버시바우 대사는 "우리는 개혁파 유대인(Reform Jewish)이기 때문에 히브리 찬송은 잘 못하지만 집안에 촛불을 켜고 하누카를 즐기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최원기 기자<brent1@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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