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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쾌적하고 보다 편안하게 작품을 향유하는 공간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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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6호 14면

새로 이전한 휘트니 미술관의 외부 모습. 사진 Nic Lehoux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남서쪽 미트패킹 디스트릭트로 전 세계 주요 언론이 모여들었다. 4년 여의 공사 끝에 새 모습으로 탄생한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을 공개하는 자리였다.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 매장과 개성 넘치는 편집숍, 고급 레스토랑과 부티크 호텔이 들어선 갱스부르트 스트리트. 뉴욕의 랜드마크가 된 하이 라인 파크와 허드슨강을 양쪽으로 낀 좁은 골목에 비대칭의 독특한 외관을 자랑하는 거대한 9층짜리 새 건물이 위용을 뽐내며 서 있었다.

새로 탄생한 뉴욕 휘트니 미술관 가보니

입구에 들어서자 시야가 탁 트이는 높은 천정과 현대적이고 세련된 느낌의 로비가 한눈에 들어왔다. 맨해튼 업타운에서 다운타운으로 이전한 미술관의 새로운 시작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회견이 이날 오전 11시부터 시작됐다. 무려 4억 2200만 달러(약 4562억 원)가 투입된 이 거대한 프로젝트를 준비해 온 경영진과 이사진, 건축가와 디자이너, 큐레이터와 스태프는 물론, 참석한 기자단의 표정까지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사진 Nic Lehoux

먼저 건축가 렌조 피아노(78)가 단상에 올랐다.

“우선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이곳을 보통 로비라고 부르는데, 저는 로비라는 말보다 광장이라는 뜻을 지닌 이탈리아어 ‘피아자(piazza)’라는 말로 부르고 싶습니다. 단순히 건물 1층에 있는 공간이 아니라 이 공간을 나가면 바로 마주하는 뉴욕의 거리와 주변의 정겨운 이웃이 항상 연결되어 있는 공간이기를 바랍니다. 누구든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문턱 낮은 미술관을 만들고 싶었고, 이는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제가 가장 염두에 두었던 부분입니다.”

그의 말처럼 1층 로비에 자리한 존 에켈 주니어 파운데이션 갤러리(John R. Eckel, Jr. Foundation Gallery)는 무료로 개방되며, 누구든지 입장 가능한 ‘자유분방한 공간’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그가 말한 ‘자유’라는 주제는 건물 디자인의 중요한 컨셉트이자 난해하게만 느껴지는 현대 미술과 대중과의 거리감을 좁히려는 미술관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특히 맨해튼이라는 지역이 주는 공간적 제약을 넘어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이 최대한 편안하게 예술작품과 교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고 그는 강조했다.

새 미술관의 면적은 2만500㎡로 예전 공간의 두 배가 넘는다. 옥외 공간도 4600㎡에 이른다. 예전과 비교해 가장 달라진 점이 건물의 공간감과 일조량이다. 바우하우스 출신의 건축가 마르셀 브로이어(Marcel Breuer)가 디자인한 옛 건물은 피라미드를 거꾸로 세워둔 듯한 외형에 건물 내부로 빛이 잘 들지 않는 다소 무거운 느낌이었다. 하지만 새 미술관은 유리와 강철이라는 소재를 사용해 곳곳으로 밝은 햇살이 들어와 가볍고 열려있는 공간감을 준다. 특히 야외 테라스와 외부 전시 공간이 넉넉해 문만 열고 나가면 사방으로 탁 트인 뉴욕의 멋진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서쪽으로는 아름다운 허드슨강과 건너편 뉴저지 주까지 펼쳐지는 자연의 장관이, 동쪽으로는 미드타운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사진 Nic Lehoux

“미국의 정신을 예술로 보여준다”
주요 전시 공간은 5층부터 8층까지다. 특히 1675㎡ 규모의 5층 전시 공간은 내부에 기둥이 없이 설계된 점이 독특하다. 시야를 가리는 어떤 장애물도 없이 뻥 뚫려있는 공간으로 뉴욕 미술관 가운데 가장 큰 오픈 스페이스다. 대규모 설치 작업이나 비디오 아트, 크기에 구애 받지 않는 다양한 비주얼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구현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6~7층은 주요 상설전, 8층은 특별전을 위한 공간이다. 1200㎡ 규모의 외부 테라스도 다양한 옥외 전시와 공연 공간으로 쓰일 예정이다. 새로 만들어진 교육 시설도 주목거리다. 170석 규모의 극장(Susan and John Hess Family Theatre)과 최신 설비를 갖춘 교육 센터(Laurie M. Tisch Education Center)는 모두 3층에 있다.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다나 드 살보(Donna De Salvo)가 개관전인 ‘보기 어려운 미국(America is hard to see)’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제 우리에게 휘트니라는 이름은 단순히 새 건물이 아닙니다. 이는 새로운 아이디어이자 결국 우리 자신에게 던지는 새로운 질문이고 근본적인 화두입니다. 화두의 핵심은 ‘미국의 예술’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와 에밀 드 안토니오의 다큐멘터리에서 인용한 문장 ‘보기 어려운 미국’을 타이틀로 내건 이번 개막전은 총 400여 작가의 650여 점을 선보이는 야심적인 전시다. 20세기 초부터 현재에 이르는 미국 미술사를 연대기적으로 구성, 총 23개 챕터로 나누어 당시 활동했던 예술가들을 재조명한다. 끊임없이 진화해 온 미국의 정신과 미국 문화의 정체성을 재해석하고, 정치적· 사회적 규제와 맞서 창작의 혼을 불태운 당시 예술가들의 사회 공헌적 의미를 기념하려는 의도도 숨어 있다. 휘트니는 이제 컬렉션이 2만2000점에 이르고 총 3000여 아티스트의 작품을 보유한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거듭났다.

뉴욕 풍광이 한눈에 보이는 테라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던가. 아무리 훌륭한 예술 작품도 배가 고픈 상태에서는 감동의 깊이가 덜하기 마련이다.

관람객들을 위해 휘트니 미술관에는 두 개의 레스토랑이 입주했다. 모든 다이닝 서비스는 뉴욕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꼽히는 대니 마이어(Danny Meyer)의 유니온 스퀘어 외식그룹이 맡게 됐다. 1층 로비에 있는 ‘언타이틀드’는 72석의 규모로 제철 식재료를 사용한 뉴 아메리칸 퀴진을 선보인다. 좀 더 캐주얼한 컨셉트의 ‘스튜디오 카페’는 8층에 있는데 간단한 스낵과 커피, 디저트를 즐길 수 있다.

무엇보다 8층 테라스에서 멋진 뷰를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다른 미술관 다이닝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매력이라 하겠다. 모든 레스토랑 메뉴는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인 그래머시 타번(Gramercy Tavern)의 마이클 앤소니(Michael Anthony) 셰프가 총괄한다.

개관과 함께 각종 특별 행사가 이어졌다. 5월 1일에는 공식 개막을 축하하는 이례적인 조명쇼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진행됐다. 조명 디자이너 마크 브릭만(Mark Brickman)은 조지아 오키프·에드워드 호퍼·앤디 워홀·바바라 크루거 등 휘트니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테마로 12가지 LED 조명쇼를 펼쳤고 이는 뉴욕의 밤하늘을 화려하게 밝혔다.

한편 매디슨 애비뉴에 있는 휘트니 미술관 옛 건물은 내년 3월부터 2023년까지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현대 미술 갤러리로 운영된다.

뉴욕 글 이치윤 문화 칼럼니스트 chiyoon.lee@gmail.com, 사진 휘트니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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