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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 권력과 전쟁” 외쳤던 홍준표 … 20년 만에 피의자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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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부패한 정치권력과의 전쟁을 다시 한번 벌여보고 싶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해 아쉽다.”

 1995년 10월. 41세의 홍준표 검사가 검찰을 떠나며 남긴 말이다. 검사 시절 강단 있는 수사로 ‘모래시계 검사’로 불렸던 그가 20년 만에 검찰청사로 돌아온다. 이번엔 피의자 신분으로 후배 검사들 앞에 앉게 됐다. 친정인 검찰과 ‘전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다.

 경남기업 관련 의혹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대전지검장)은 8일 오전 10시 홍준표 경남도지사를 소환한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메모에 등장한 8인 중 첫 조사 대상자다. 홍 지사는 2011년 6월 한나라당 대표 경선을 앞두고 성 전 회장에게서 1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수사팀은 홍 지사 측이 조직적으로 ‘말 맞추기’ 등 증거인멸을 시도했다고 보고 홍 지사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돈 전달자로 지목된 윤승모(52) 전 경남기업 부사장을 회유한 의혹을 받고 있는 김해수(58) 전 청와대 정무1비서관은 이미 검찰 조사를 받은 상태다. 회유 당시 상황이 녹음된 파일도 확보했다. 수사팀은 홍 지사를 상대로 ▶성 전 회장의 돈 1억원을 받았는지 ▶증거인멸을 지시했는지 등을 집중 조사할 계획이다. 홍 지사는 검찰 출두를 하루 앞둔 7일 연가(휴가)를 내고 출근하지 않았다. 정장수 경남도 비서실장은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나 “오늘 하루 연가를 낸다고 방금 연락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정 실장은 홍 지사가 검찰 소환에 대비하기 위해 연가를 낸 것인지, 홍 지사가 현재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등에 대한 질문에는 “모른다”고 답했다.

 검사 출신인 홍 지사를 상대해야 하는 수사팀도 긴장하는 모습이다. 수사팀 관계자는 “탁월한 수사력으로 이름이 높았던 홍 지사를 조사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진술과 물증을 탄탄하게 구성해 혐의 입증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홍 지사는 88년 서울 노량진수산시장 경영권 강탈 사건 수사에 이어 91년 조직폭력배를 대거 구속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93년 서울지검 강력부 검사였던 홍 지사는 이른바 ‘슬롯머신 사건’을 맡아 ‘6공의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 전 체육청소년부 장관을 구속하며 스타 검사로 떠올랐다.

 홍 지사의 활약상은 드라마 ‘모래시계’의 주인공 검사(박상원)로 재탄생했고 그에게 ‘모래시계 검사’라는 별칭이 붙었다. 95년 검찰을 떠나 정계에 입문한 그는 4선 의원에 여당 대표, 경남지사로 당선되며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등 탄탄대로를 달렸다.

 그런 홍 지사가 ‘성완종 리스트’로 추락할 위기에 놓인 것이다. 이번 사건은 자신이 수사했던 슬롯머신 사건과 닮은 부분이 많다. 당시 슬롯머신업계의 ‘대부’였던 정덕진씨에게서 세무조사 무마 청탁과 함께 5억원을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던 박철언 전 장관은 “배달사고”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홍 지사는 “뇌물 사건의 80%는 물증이 없다”며 박 전 장관을 구속 기소했다.

 그런데 이번엔 홍 지사가 물증이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는 특히 윤승모 전 부사장이 배달사고를 냈을 가능성을 언급하며 방어막을 치고 있다. 홍 지사가 8일 검찰 조사에서 자신을 옥죄어오는 ‘의혹의 올무’를 풀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백기 기자, 창원=위성욱 기자 key@joongang.co.kr

‘6공 황태자’ 구속시킨 스타에서 이젠 후배 검사와 ‘1억 진실’ 공방
검찰은 구속영장 청구도 검토
홍 지사 어제 휴가 내고 조사 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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