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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의 미술축제, 베니스 비엔날레 9일 개막

중앙일보

입력

#1. 원통형 유리 건물이 그대로 영화관이 됐다. 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니스 카스텔로 공원 내 자르디니,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은 통유리 건물에 LED 패널을 설치해 영상 ‘축지법과 비행술’을 상영했다. 건물 안팎에서 대사 없는 7개 채널 영상이 흘렀다. 배우 임수정이 세계의 파국 이후의 인간을 연기했다. 공상과학영화를 닮은 이 10분 30초짜리 영상에서 그는 물에 잠긴 베니스에 부표처럼 떠다니는 한국관에 살아남은 마지막 인류로서 예술가의 역할과 각성을 보여줬다.

#2. “폐쇄와 금기의 나라 쿠웨이트에서 조국의 명예와 경제를 짊어지고 있습니다. 땀흘리는 저희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노래 중간 중간 한국어와 영어로 편지글 내레이션이 울렸다. 검은 방 안에서 7명의 남녀 가수가 노래하고 읊조리고 탄식했다. 이들 뒤편 벽에는 석유 파동, 걸프전 등 중동의 석유와 관련된 인포그래픽이 정리돼 있었다. 베니스 아르세날레에서 열린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 ‘모든 세계의 미래’에 초대된 김아영(36)의 설치와 합창 퍼포먼스 ‘제페트, 그 공중정원의 고래 기름을 드립니다, 쉘3’다.

세계 최대의 미술축제 베니스 비엔날레가 9일 개막한다. 올해로 120주년을 맞은 베니스 비엔날레는 격년제 미술전람회를 뜻하는 ‘비엔날레’라는 말의 시초가 된 유서 깊은 현대미술제다. 총감독(오쿠이 엔위저)이 기획하는 본전시 외에 참여 국가별로 진행하는 국가관 전시가 특징이어서 ‘미술 올림픽’으로도 불린다. 올해는 본전시 ‘모든 세계의 미래’에 53개국 136명의 작가들이, 국가별 전시엔 89개 국가관이 참여했다.

한국관은 이숙경 커미셔너(영국 테이트 미술관 아시아 태평양 미술연구소 책임 큐레이터)의 진행으로 문경원ㆍ전준호(46) 듀오의 새 영상 ‘축지법과 비행술’을 선보였다. 베니스에 마지막으로 개관한 국가관으로, 20주년을 맞은 한국관을 통해 베니스 비엔날레의 과거와 현재를 상징적으로 훑는 영상이다.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관장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는 전시를 보고 “신화적ㆍ토속적인 제목인 동시에 모든 이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한국관을 만든) 백남준이 봤다면 기뻐했겠다”고 말했다.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인 마시밀리아노 지오니,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삼성미술관 리움의 홍라희 관장 등이 한국관을 찾았다.

본전시에도 김아영ㆍ임흥순(46)ㆍ남화연(36) 세 명의 한국 미술가가 6년 만에 초대됐다. 김아영은 중동에 근로자로 파견됐던 아버지의 기록을 바탕으로 물질이자 에너지원인 석유와 이를 둘러싼 국제 외교를 다룬 퍼포먼스와 설치를 내놓았다. 임흥순은 봉제공장 조수로 40년을 일했던 어머니에서 출발, 아시아 여성 노동자들을 인터뷰한 영화 ‘위로공단’을 출품했다. 9일 개막식에서는 국가관별·작가별 시상식도 열린다. 지난해 건축전에서 한국관(커미셔너 조민석)이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데다, 올해는 5인의 심사위원단에 첫 한국인 심사위원으로 이용우 전 광주비엔날레 대표가 참여해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기대가 높다.

◇비엔날레 외전(外戰)= 2년마다 세계 미술의 중심은 베니스로 이동한다. 비엔날레를 보러 전세계 미술관 관계자, 예술가와 후원 화랑, 컬렉터들이 몰린다. 이들의 눈길을 끌기 위한 볼거리 경쟁이 비엔날레 안팎에서 치열하다. 본전시·국가관 전시 외에도 비엔날레측이 승인한 병행 전시가 44건 열린다. 이 중 ‘단색화’, 이매리 작가 참여 ‘산수, 미래로의 통찰’, 전광영ㆍ김준의 ‘남아있는 개척지’ 등이 한국 현대 미술 관련 병행 전시다.
이밖에 김수자, 박병춘, 이현준ㆍ장지아(기획 김승민) 등이 베니스 곳곳에서 전시를 열며 한국 미술의 다양한 면모를 소개한다.

베니스(이탈리아)=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베니스 비엔날레= 전세계 300여 비엔날레 중 가장 오래되고 영향력 있는 국제 미술전이다. 격년으로 미술전과 건축전을 병행한다. 올해 비엔날레는 밀라노 엑스포와의 시너지 효과를 위해 예년보다 개막을 한 달 앞당겨 9일부터 11월 22일까지 열린다. 2013년 미술전에는 47만5000여 명의 관람객이 몰렸고, 내외신 기자 7100여 명이 현장을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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