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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4일 동안 0승 10패…그래도 행복한 심수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사진 일간 스포츠]

지난달 23일 광주에서 열린 프로야구 롯데와 KIA의 경기. 롯데는 6회 말까지 5-2로 앞서나갔다. 당연히 선발 심수창(34)이 승리투수가 돼야 마땅했다. 그러나 롯데는 9회말 5점을 내주고 6-7로 졌다.

심수창은 배명고 시절 미국 메이저리그 구단의 관심을 받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얼굴도 잘 생겨 2004년 LG 입단 때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2006년 10승(9패)을 달성한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2009년부터 세 시즌에 걸쳐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18연패를 해 프로야구 최다 연패라는 달갑지 않은 기록도 갖고 있다.

넥센에 이어 2013년 롯데로 이적한 그는 은퇴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러나 막다른 골목에서 심수창은 투구 폼을 바꿨다. 위에서 내리꽂는 오버핸드스로 투수였던 그는 릴리스 포인트를 어깨 높이로 내렸다.

스리쿼터로 던지면서 그에게 드라마 같은 반전이 일어나고 있다. 올해 23과 3분의 1이닝을 던져 1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1.95를 기록 중이다. 최근엔 롯데의 마무리가 불안한 탓에 불펜 투수로 나서고 있다. '불운의 아이콘' 심수창을 부산에서 만났다.

-1승이 참 어렵다.

"동료들이 실책하고 싶어서, 점수를 내주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다. 잘하려고 하는데 안 되는 것뿐이다. 나처럼…."

-지난해와 달라진 점은.

"그 때 난 패전처리 투수였다. 무실점을 해도 티가 안 나더라. 그래도 나 스스로 좋아졌다고 믿었고, 지난 겨울 더 노력했다."

-사이드암 폼이 효과를 보고 있다.

"작년에 훈련을 하다 장난으로 팔을 내린 자세로 던져 봤다. 평소보다 시속 7~8㎞가 더 나오더라. 내가 3군에 있을 때 총괄을 맡았던 이종운 (현 롯데) 감독님이 '야구를 5년쯤 더하겠다'며 좋아하셨다. 위로 던지는 폼과 옆으로 던지는 폼을 섞어서 쓰니 타자들이 헷갈리는 것 같다."

-최근 2경기에서는 불펜으로 나왔다.

"내가 찬밥, 더운밥 가릴 수 없지 않나(웃음). 이제 한 달 했는데 이렇게 주목을 받을 줄 몰랐다."

심수창은 2011년 8월 9일 연패를 끊고 인터뷰하다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는 지금도 10연패를 기록 중이다.

-야구를 그만두려고 했다던데.

"지난해 구단 관계자를 찾아가 '남은 연봉을 받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짐을 싸서 서울로 올라왔는데 어머니께서 '앞으로 계속 도망만 다닐 거냐'며 우셨다. 결국 돌아왔다."

-4년 만에 다시 승리투수가 된다면.

"이제는 담담할 것 같다. 18연패 때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았다. 그땐 '18연패는 하라고 해도 못하겠다'며 비웃는 사람들도 있었다. 잠 한숨 못 자고 던진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젠 도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불운의 아이콘'이라던데.

"내가 유난히 승운이 없는 건 사실이다(웃음). 그래도 많은 관중의 환호를 받으며 던질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난 행복한 사람이다."

-외모 때문에 관심을 많이 받았다.

"내가 야구를 못하면 '쟤는 얼굴만 잘 생겼지 제대로 하는 게 없다'고 사람들이 말했다. 훈련을 게을리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나는 노력파다. 고3 때 스티브블래스 증후군(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증세)을 겪은 적이 있다. 하루에 공 1000개 씩 던지며 극복했다. 지금도 가끔 새벽까지 공을 던진다."

부산=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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