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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수진의 한국인은 왜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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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전수진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제목에 기분이 혹 상하셨다면 사과드린다. 작가 요네하라 마리(米原万里·1950~2006)가 반려동물과의 행복한 생활을 그린 에세이집 제목을 빌렸다. 개인적으로는 이 제목에 반대한다. 몇몇 한국 남성이 자국 여성을 ‘김치년’이라고 조롱해도, 어느 수준 이하 코미디언이 했다는 여성 혐오 발언이 귀를 찔러도, 어떤 인기 가수가 여성의 몸매를 치수화해서 노래 가사랍시고 내놔도 일부의 이야기일 테니까. 일본 모 샴푸 브랜드 광고처럼 “일본의 여성은 아름다워요”라는 식의 마케팅까진 바라지 않지만 모든 한국 남자가 모든 한국 여자를 적으로 돌리는 건 아니(라고 믿고 싶으)니까.

 징징대는 일부 남자의 고단함도 이해는 된다. 담뱃값 아껴가며 명품 가방을 사다 바친 후엔 여자친구님이 무거워할까 봐 그 가방을 들어주기까지 하는 장면을 보면 남자가 아니라서 천만다행이라고 느낀다. 남자 그림자도 밟지 못했던 여자들이 이젠 학교는 물론 입사 성적까지 더 높다고 하니 울화통이 터질 법도 하다.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가방을 들어주는 건 성형의 힘이든 DNA의 덕이든 남자들이 원하는 ‘몸매 스펙’을 갖춘 여성을 골라 사귀는 데 대해 응당 치러 마땅한 비용 아닐지. 또 게임에 빠질 시간에 공부를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생각한다면 공감력 부재를 드러내는 것인지.

 프랑스 예술원 최초 여성 정회원이면서 조지 오슨 웰스가 “최고의 여배우”라고 칭송한 잔 모로(87)의 지혜를 빌려보자. 어느 기자회견에서 그는 (아마도 남기자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 “모로씨, 당신이 남성에게서 찾는 것은 무엇입니까? 명예입니까? 아니면 지성? 재산?” 모로는 답했다. “그런 것들은 이미 제가 갖고 있습니다. 남자 분은 단지 아름답게만 있어주시면 됩니다.”

 이 ‘왕 언니’의 우문현답에 갈채를 보내며, 이런 생각이 든다. 더 많은 한국 남성이 “아름답게만 있어”주길 바라는 건 무리이며, 그 책임은 여성에게 있을지 모르겠다고. 모로와 같이 1928년생인 일본 여성 소설가 다나베 세이코(田邊聖子)는 『침대의 목적』에서 말했다. “일본 남성이 일부 혐오스러운 행동을 하는 건 여성이 교육을 제대로 안 시켰기 때문”이라고. 여기에서 ‘일본’을 ‘한국’으로 바꿔도 99% 무방하다.

 모든 남성이 배우 정우성이나 가수·배우 후쿠야마 마사하루(福山雅治)처럼 아름답기를 바라는 건 무리다. 그 전에 여성부터 명예·지성·재산을 갖추도록 노력하라고 모로와 다나베는 일갈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 동지들이여, 분발하자. 가방은 제발 직접 들고.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