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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규씨 미망인 강인화여사 23년만에 비화공개수기 여성중앙 7월호에 독점게재|남편살리려 처형직전「탈옥」모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3·15부정선거(1960년)로 처형된 전내무장관 최인규씨의 미망인 강인화씨 (61·미캘리포니아주 우드랜드힐거주)가 남편이 돌아간지 23년만에 그 역사적상황의 비화를공개하는 4백장의 수기를「여성중앙」(7월호)에 기고했다. 강씨는 이 수기에서 3·15, 4·19의격동에서 사형을 받기까지 남편최씨의 인간적 고뇌를 기록하면서 처형직전 남편을 살려내기위해 「탈옥」을 모의한 사실등 알려지지않았던 얘기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강씨는남편이 처형당한뒤 장남을 국내에서 가르칠수없어 브라질로 보냈으며 남은 3남매를 키위 결혼시킨뒤 10년전 미국에 이주했다가 지난달초 서울에사는 자녀들을 만나보러 일시 귀국했다. 최씨의유자녀 2남2녀중 장녀와차남은 서울에서, 장남과차녀는 미국서 살고있다.
강씨의 수기를 요약해소개한다.

<〃내무는 자네가 하게〃>
교통부장관이 된지 6개월만에 느닷없이 내무부장관으로 임명받고 돌아은날 남편은 몹시 걱정스런 표정으로 『내무부에 대하여는 아무것도 아는것이 없고 자신도 없는데 대통령께서 「이번에는 내무부를 자네가 꼭 맡아주어야한다」고 하니 큰일이다』고 말했다.
그것이 그토록 가혹한 운명이 될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우리부부는 무언가 불안을 달래는 뜻에서 그때부터 새벽이면 기도하는 습관이 생겼다.

<〃나에게 힘을…〃기도>
4월초 어느날아침 4시도 되기전에 남편이 남산에 가자고 나를 깨웠다. 남산꼭대기에 올라가 어느 바위앞에서 기도하던 남편은 갑자기 소리내어 『주여, 이 무거운 짐을 맡은 나에게는 힘이 부족하오니 주님께서 도와주셔서 내게 맡겨진 책임을 완수할수있게 하여주소서. 만약 이것이 하느님의 뜻이 아니거든 나의 생명을 거둬주소서.』 그리고는 느껴 우는 것이었다.
3·15투표일에 우리부부는 투표장주위가 너무나 조용하고 모두 심각한 표정임을 느꼈다.
남편은 투표를 끝내고 돌아와 『선거가 끝났으니 내무장관 사표를 내고 오로지 국회의원만으로 자유롭게 소신데로 할수있게 되었다』고 기뻐했다.

<모든책임을 내가진다>
선거가 끝난 3일뒤 남편은 말대로 사표를 냈고 사표가 수리된뒤엔 두문불출, 침실과 서재사이를 오가며 사색에 잠겨있었다.
그러던중 전국에서 데모가났다.
내무부에서는 경찰관2명을 경비하라고 집으로 보냈으나 남편은 화를 내며 돌려보냈다.
그날 저녁 내무차관과 치안국장이 찾아왔다. 치안국장이 『동해안쪽으로 배를 하나 준비해 해외로 가도록 말씀드려 보는것이 어떻겠느냐』고 나한테 말했다.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남편은 별안간 나의 뺨을 후려갈겼다.
『남자가 저질러놓은 일에, 책임을 져야할 마당에 어디를 도망가느냐』 4월 18일밤 데모대는 우리집에도 몰려 온다는소문이 들어왔다. 시누이와함께 남편을 밀고 끌다시피하면서 지프에 태워 집을 빠져나왔다. 우리집은 우리가 나온지 10분도 못돼서 데모대가 불을 지르고 파괴했다.
막상 집을 나오니 갈데가없었다.
광나루방면 변두리를 돌다 산부인과병원을 하고 있는 먼친척 부인이 생각났다. 부인은 갑자기 들이닥친 두를 주저없이 맞아 입원실 하나를 비워주었다.
이기붕의장가족자결, 이박사하야, 자유당정권은 붕괴되고 말았다.
5월초 남편은 지방검찰청에 자진출두했다. 법정에 선 남편은 자기가 아는 사건이나 모르는 사건이나 무엇이든 자기가 했고 자기책임하에서 이루어졌다는식으로 진술했다. 끝내 사형이 구형되고 선고됐다.
5·16이 나고 재판은 다시 진행돼 상고심에서도 사형이 선고됐다.
이제는 남편을 구할 길이 없게됐다.
그런 어느날 먼친척이 되는 군인출신의 송목사가 찾아왔다. 심각한 표정으로『이제 최장관을 살릴길은 비상한 조치밖에 없읍니다. 나의조카되는 사람이 서대문형무소의 형무관으로 있으니 이사람을 매수하여 최장관을 탈옥시키고 동해안쪽에 배를 준비했다가 외국으로 가도록하는것이 어떻겠습니까』

<남편에 모의쪽지건네>
상상도 못해본 일에 깜짝놀랐으나 남편을 살려낸다면 무슨짓인들 못하랴는 생각이들었다.
밤새도록 남편의 마음을 움직일 방법을 생각하다가 얇은 미농지에다 편지를 써서 돌돌말아 작게 접어가지고 다음날 면회시간에 형무관의 눈을 피해 남편의 손에 쥐어주었다.
다음날 면회시간에 형무관뒤를 따라 들어오는 남편의얼굴을 보니 오만상을 찌푸린채 나릍 쳐다보지도 않았다.

<처형소식에 정신잃어>
한참만에 남편은 나를 똑똑히 쳐다보며 평소의 우렁찬 목소리로 『당신만은 이세상에서 나를 이해해줄것으로믿고 마음든든히 생각하고 있는데 이제 나의 얼굴에 똥칠을 할참이냐』 고 금방 덤벼들것같이 화를 냈다.
61년 12월21일 그날도 아침 일찍 서둘러 면회를 갔다.
집에 돌아오니 왠젊은사람들이 와있었다. 신문기자들이었다. 『장관께서 면회가 끝난직후 상오10시에 처형되셨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만정신을 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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