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감각」과는 너무나 먼 세계|투서, 외화밀반출 사건을 보고-이호철(작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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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 나라 대표적 교회 목사의 거액외화 밀반출사건과 정치인들의 투서소동으로 야기된 추태 노정.
이 사건들은 연일 북치고 나팔불 만큼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놀랍다면 어쩌다가 이런 일이 이런 충격적인 형태로 언론에 쏟아져 나오게 되었느냐하는 그 점일 것이다.
한쪽은 발각되었고 한쪽은 투서소동으로 사회에 깡그리 노출되어 나왔다. 솔직히 말해 그 투서를 낸 쪽은 배짱한번 좋았던 것 같다. 제정신 가진 사람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제정신 못 가졌기 때문에 국민의 입장에서 보자면 도리어 큰일 하나는 해낸 셈이다.
그리하여 명문대학 종교학과 출신의 한쪽은 부부구속과 교회의 회고하는 아우성소리로 마무리지어지려 하고 있고 별들의 싸움인 한쪽은 공직사퇴와 국민에 대한 사과문, 그리고 『재산의 사회위원』발표로 일단 마무리가 지어지는 것 같다. 일반국민들은 여전히 못 오를 나무 쳐다나 보는 식으로 악연 해 있을 뿐이다.
필자생각도 매한가지다. 이런 일로 무슨 일이 일어나서야 되겠는가. 모름지기 일없이 무사히 넘겨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일들을 과연 이런 식으로만 마무리짓는 것이 무사히 넘기는 길일까.
아무리 회개의 기도 문귀를 소리높이 읊어본들 그 교회가 오랜 세월 누려온 기득권의 덩어리는 여전히 바람 한 점 안 맞고 온존되어 있으며, 돈푼 깨나 있는 목사들은 여전히 간단한 위병조차 비행기타고 미국병원엘 찾아가고 있는 형편이다.
한편 4성 장군으로 60억에서 1백억 이상의 재산을 갖고있는 주제에 그런 「돈키호테」적 투서소동을 벌여 가해자 피해자 없이 다같이 문중의 조상비석에까지 오물을 뒤집어쓰게 했다.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이들 기득권들을 온존시켜온 역대 정권, 정치와 근원적으로 상관되어있는 것이다. 사실 현정권은 역대로 이어져 내려온 그것들을 너무 무거운 유산으로 떠메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기득권에 버릇 들어있는 사람들의 일상생활감각이 매일매일 힘겹게 온몸으로 살아가고 있는 일반국민의 생활감각에서 너무 멀리 달아나 버렸으며, 엄청난 간극과 괴리가 생겨버렸다는 점이다. 이점을 도외시하고 아무리 민주주의의 정착을 운위하고 정의사회 구현을 내세운들 구두 선에 머물 수밖에 없다.
막말로 기득권에만 안주해서 살아오는데 버릇 들어있는 사람들이 그 자제들을 시험삼아 단 석달만이라도 구로공단이나 그 밖의 노동현장에 들여보냈더라면, 혹은 농촌 현장으로 보냈더라면, 대구의 택시기사들 틈에 끼웠더라면, 그리 하야 그들의 하루하루의 피나는 삶과 어느 한 모서리로라도 접해지는 구석이 일상적으로 있었더라면 일반 민중과의 괴리가 저 지경으로까지 벌어지고 저렇게까지는 병들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진정한 민주주의의 정착을 목메어 바라는 것은 구경에 이르면 바로 이 점에 귀착된다. 모든 국민이 하루 밥 세끼 먹고 잠 잘 자는 것으로 일단 자족하는, 누구 나가 평균치의 보통사람으로서 살아가자는 것이다.
기득권 속에 안주해서 침체한 사회의 구석구석에까지 속속들이 싱그러운 바람이 통하게 하여 그들의 병소와 사회의 질환을 미리미리 막아내자는 것이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그 기득권의 웅덩이들이 정치의 비호를 막으면서, 혹은 정치의 한가운데를 누비면서 우리 사회 곳곳에 널려 있고 활개를 치고있는 한은 정의사회의 실현은 어렵다.
이런 일들이 이런 식으로 터져 나온 다는 것은 요는 근본적으로 정치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미 말 몇 마디로 하는 관념적인 원칙이나 도덕률 따위로 해결이 날 문제가 아니다.
도려내야 할 병소와 질환으로서, 냉엄한 사실로서 냉엄하게 접근하는데서만 최소한으로나마 해결의 단초는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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