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인도] '결혼 지참금' 또 시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9면

올해 초 인도의 한 시골마을에서 15, 17, 19세인 세 자매가 함께 목을 매 자살했다. 유서에는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 딸 셋을 시집 보낼 결혼지참금을 마련하려고 고민하는 부모들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2001년 5월에는 결혼한 지 1년된 19세의 가정주부가 주방에서 불타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자의 시어머니와 남편은 요리 중 석유램프의 불이 옷에 옮겨 붙어 일어난 단순 사고였다고 주장했으나, 시신의 앞니가 부러져 있었고 손목 관절과 가슴에 구타 흔적이 남아있었다.

경찰 조사결과 사망자를 상습적으로 폭행해온 시집 식구들이 끝내 그녀를 불태워 살해한 사실이 드러났다. 결혼지참금으로 요구한 컬러TV와 오토바이를 마련하지 못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인도에서 여성을 비인간화하는 악습으로 지적돼온 결혼지참금 제도가 다시 한번 도마에 올랐다.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28일 "과도한 결혼지참금을 요구한 시어머니들을 수용하는 감옥이 최근 만원사례를 빚고 있다"며 "이들 중 대부분은 전혀 뉘우치는 기색이 없으며 며느리의 '사악한 계략' 때문에 감옥에 오게 됐다고 주장한다"고 보도했다.

인도정부는 1961년 '결혼지참금 금지법'을 제정했고 84년에는 이를 더욱 강화했지만 지참금은 오늘날까지 인도 여성을 억압하고 있으며 그 폐해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현재 인도인의 평균 지참금은 15만 루피(약 3백80만원). 중산층 가정의 평균 연수입은 3만루피다.

신문에 따르면 요구한 액수의 결혼지참금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랑 가족에 의해 살해된 여성의 수는 80년대 중반 4백명 선이었으나 96년에는 5천5백여명, 지난해에는 7천여명으로 늘어났다.

말라비카 라즈코티아 여성 인권 변호사는 "지참금 금지법은 사실상 이 제도를 막는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며 "재판에 회부하더라도 인도 법정의 특성상 최종 판결이 나오기까지 10년 정도 걸릴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달 중순에는 결혼식을 몇시간 앞둔 예비신부가 "지참금이 부족하니 현금을 더 달라"고 요구한 신랑과 시어머니를 경찰에 신고, 감옥에 보내 화제가 됐다.

21세의 컴퓨터 공학도인 니샤 샤르마는 "자동차와 홈시어터.에어컨 등을 2대씩 장만해 신랑 측에 보냈으나 만족하지 못한 신랑 가족이 현금 2만5천달러(약 3천만원)를 추가로 요구했다"고 증언했다.

신은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