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화 한일회담(251)들통난 위장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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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우시바」 차석대표는 이규성공사와 함께 「다까스기」 망언을 진화할 방안을 구체적으로 협의한후「다까스기」 수석에게 상황의 중대성을 실명하고 그가 이르는대로 따라줄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나는 연말·연초휴회후 처음 열린 1월18일상오 제3차본회의에 참석, 이 문제는 모른체 덮어두고 『금년은 특히 한일양국간의 불미스런 관계의 출발점이 됐던 소위 「을사보호조약」 의 유력이 되는 해』 라고 지적하고 『그러나 우리 정부와 국민은 과거의 감정에만 구애됨이 없이 한일양국간에 개재하는 현안을 정의와 형평의 원칙에 따라 해결하여 불행의 「을사년」을 영광된「을사년」으로 바꾸어야할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석대표간의 주례정기회담및 분과위운영일정등 간단한 협의가 끝난후 나는 약간와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채 외무성회의실을 빠져나와 우리공관으로 돌아왔다.
왜냐하면 「다까스기」 수석이 이날하오 나의 계책에 따라 자연스럽게 한국보도진들과 상견례형식의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의 망언을 해명하게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다까스기」 수석은 우리 보도진과 만나 『한일간의 국교정상화는 이번 7차회담에서 꼭 이루어져야 한다』 는 등 자신의 결의를 피력했다.
그는 이어 『내가 36년간 일본이 한국을 통치한 것은 유익했다고 말한 것으로 인용보도한 평양노동신문의 기사는터무니없는 것이며, 공산측이 회담을 방해하기 위한 트집』이라고 그런말을 한일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는 또 사견을 전제로 『일본은 과거의 한국지배가 아직도 한국민에게 마음의 상처가 되고있는데 대해 책임을 느껴야하며 앞으로의 교섭이나 양국관계에서 행동으로 사과해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특파원들도 그가 사실무근임을 해명하면서 망언내용과는 달리 그들의 과거죄업에 대해 행동으로 사과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하자 그의 해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것 같다는 보고를 받고 내 계책대로 잘 되었구나하고 안도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이튿날 서울서 날아든 긴급훈령을 보고 나의방심은 사산조각이 나버렸다.
19일자 동아일보가「다까스기」주석대표 중대실군이라는 제목으로1면 머리기사로 올렸고 정계반향까지 실었던 것이다.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우시바」차석에게 설명하고 부득불 20일의제1차 수석대표회담에서 정식으로 외교문제화할터인즉 「다까스기」주석이 공식부인할 문안을 만들어 읽게할 준비를 갖추라고 요청했다.
우선 ,소화가 시급했기 때문이다.
나는 20일 회담에서 동아일보기사를 전부읽고 그것이 사실인가를 묻고 사실이라면 중대한 문제일뿐아니라 회담계속여부도 재검토돼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까스기」 수석은 『본인이 켤코 그와같은 발언을 한 일이 없다』고 강력히 부인하고 준비된 성명을 낭독했다.
『…나는 한국민이 일한간의 역사적 관계에 대해 극하 날카로운감정을 가지고 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나는 한국민의 이런 기분을 어떻게 하면 대일우호감으로 가져가느냐에 관해서 자부심하고있다.…이런 신념과 각오를 가지고있는 내가 어떻게 일부에 보도된 바와같은 말을 할리가 있겠는가….』
나는 한일관계의 조기정상화라는 목표관철을 위해 우리국민 누구나처럼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제하고, 한판의 위장극을 연출했던 것이다.
「다까스기」망언은 여운이 없진 않았지만 나의 이런 호도술에 힘입어 「구보따」 망언의 전철을 밟지는 않게됐던 것이다.
나의 이같은 행동에 대해 비판의 여지도 있겠지만 국가간의 관계에는 상황에 따라서는 덮어둬야할 사안도 있다고 믿는다.
그것이 외교의 한 특성이 아니겠는가.<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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