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선거법 위반 기소되는 '돼지 저금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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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해 쓴 대선자금이 돼지 저금통 등 절반 이상은 국민성금이었으며, 자신이 경영했던 장수천의 20억원대 채무 청산은 대선자금과 무관하다고 했다.

대통령은 국민이 모아준 돈을 개인 빚을 갚는 데 쓰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돼지 저금통'을 거론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 '돼지 저금통'건으로 검찰이 노사모 핵심 관계자들을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키로 했으니 따지자면 대통령이 위법행위를 통해 모금한 돈을 사용했음을 자인한 셈이 됐다.

우리는 돼지 저금통을 동원한 노사모의 활약을 기억한다. 단순한 모금을 넘어 '노풍'을 확산시키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그런데 검찰은 이 행위를 불법 선거운동이라고 판단했다.

특정인을 상징하는 물품을 제작.판매할 수 없도록 한 선거법 제90조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불법행위가 포함됐다는 선거를 우리는 어떤 눈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

40명 안팎 관련자들의 혐의는 2년 이하 징역이나 4백만원 이하 벌금에 해당되니 이들이 처벌받으면 끝나는 문제인가.

이 같은 행위가 유권자들의 선택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계량할 수는 없다. 또 이런 선거법 위반 기소가 선거결과를 뒤집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선거 때 무슨 불법을 저질러서라도 당선만 되면 그만이라는 이런 풍토를 그대로 내버려둘 것인가.

지난해 내내 민주당이 한나라당 후보를 겨냥해 제기한 병역비리, 20만달러 수수, 기양건설 자금수수 등 이른바 3대 의혹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제기된 의혹은 모두 허위로 드러났다.

의혹을 제기한 쪽이 사법처리되는 상황이 됐다. 뒤늦게나마 의혹의 진상이 밝혀진 것은 다행이지만 선거 결과는 그대로다.

이러니 나중에야 어찌 되든 이기면 된다는 반칙의 교훈만이 판치는 선거가 되는 것이다. 불법 선거운동은 적발 즉시 차단하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민의가 왜곡되지 않고 선거의 공정성이 확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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