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46)제80화 한일회담(245)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박정희대통령은 12월5일 주목할만한 입장을 밝혔다. 주한일본특파원단의 서면회견에 응한 박대통령은 『어업문제가 대단히 힘들고 합의가 곤란할 경우 이 문제를 일단 제쳐놓고 지금까지의 교섭에서 합의를 본 청구권을 포함하는 제현안을 해결하고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실현시킬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가능한문제』라고 답변했던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선국교, 후현안타걸안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우리의 일관된 입장이 선현안타결, 후국교 정상화방안이었고 일본측 입장이 그 반대였던 것이 지난13년간의 한결같은 상황이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박대통령의 답변내용의 중요성이 실감날 것이다.
물론 이 질문은 어업문제 이외의 제현안 해결이라는 단서가 달려 종래 일본 입장과는 좀 거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내가 주목할 가치가있다고 한데는 그럴만한 비화가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주일대사로 임명을 받고 한일회담 타결은 어떻게든 내손으로 매듭짓는다는 결연한 의지를 갖고 가능한 은갖 방안을 .강구하는데 힘을 쏟았다.
그런 연구의 일환으로 내가 구상한 안의 하나가 선국교, 후현안 해결방안이었다. 당시는 물론 지금이라도 『위험천만한 발상이며 나라를 팔아먹을 놈』이라는 비판과 비난을 받기에 족한 그 방안을 생각한데는 내나름의 정확한 판단과 손익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일본부임전 한일회담 전반에 대한 브리핑을 들어본 결과 김-대평메모로 가장 어려운 청구권문제가 해결되어 어업문제를 제외한 여타문제는 양측의 진지한 협상에 올릴 경우 대체로 원만한 타결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던 것이다.
문제는 이제 우리측이 양보해야할 어업관계였다. 그런데, 이에는 우리측이 양보할수 있는 선에 명백한 한계가 가로놓여 있었다. 어업자원의 확보라는 국익차원을 넘어 국민감정이라는 활화산이 바로 그것이었다.
따라서 이 문제로 회담이 지지부진하거나 결렬될 사태는 충분히 예견됐다. 그렇다면 말썽많은 이 문제는 국교정상화이후 타결돼야할 현안으로 남겨두고 관계정상화를 하는 것도 일책이 아닐까 궁리한 것이다. 우리로선 일본측으로부터 얻어낼 것은 충분하다고는 할수 없지만 거의 얻어낸 상황이 아닌가라는 기본적 분석이 뒷받침된 때문이었다.
나는 1차 귀국때 박대통령에게 이 구상을 넌지시 제시해 보았다. 박대통령은 그것도 한 방책이겠다고 말하고 그러나 과연일 본측이 그에 응할 수 있을 것인지, 또 아무리 우리에게 유리한 면이 없지 않다 하더라도 우리국민들이 납득할 것인지가 판단이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대통령은 이 방안을 좀더 깊이 연구해 보라고 지시했다. 나는 동경에서 일본신문에 보도된 박대통령의 회견기사를 읽고서 이 구상의 구체화를 위해 깊이 생각했다.
나는 이 구체화된 방안과 함께 내년1월18일부터 재개될 한일회담 대책도 협의키 위해 12월22일 또다시 귀국했다. 한일회담은 12월21일 제2차 본회의후 연말년시로 휴회에 들어갔었다.
귀국한 이튿날 나는 박대통령을 뵙고 회담 진전상황을 보고한후 일본에서 구상한 방안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 설명을 들은 박대통령은 『그것을 문서화해서 정총리의 동의를 얻어오라』고 지시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