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미코 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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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금주 타임지(미주간)는 난데없이(?) 소련 외상 「그로미코」를 표지인물로 다뤘다. 초상화가 「G·헬른와인」은 「그로미코」의 얼굴을 사람에 가까운 원숭이의 인상으로 그렸다.
그가 요즘 서방세계에서 때없이 화제에 오르는 것은 이유가 있다. 지금 소련의 외교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사람은 「체르넨코」아닌 「그로미코」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우선 그동안 「체르넨코」가 보여준 외교문제에 관한 언행은 거의 자구하나 틀리지 않는 「그로미코」의 복사판이었다. 서방의 지도자들이 「체르넨코」와 담판을 하려고 하면 으레 「그로미코」가 가로막고 나섰다. 소련의 정치국 회의에서 LA올림픽 불참을 앞장서서 고집한 사람도 바로 그였다. 2차대전후 최악의 냉전시대 연출자도 「그로미코」. 소련에선 요즘 이런 조크(풍속화)가 유행하고 있다. 「그로미코」와 「체르넨코」가 공산당 자격시험을 보는데 「그로미코」가 먼저 합격했다. 하루는 「체르넨코」에게 그 요령을 가르쳐 주었다.
질문은 세 가지인데, 첫째 질문엔 「마르크스-엥겔스」, 두 번째 질문엔 1789년(프랑스혁명의 해). 세번째 질문엔 이론적으로 해명불가라고 대답하라는 귀뜸을 했다.
어느 날 「체르넨코」는 용약 시험에 임했다. 첫째 질문 『당신의 이름은?』, 둘째 질문 『당신의 생년월일은?』, 세째 질문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보다 우월하다는 이론적 근거는?』-.
「체르넨코」의 답안지는 0점. 「체르넨코」가 소련 안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우화다.
74세. 러시아인. 소련공산당 중앙위 정치국원. 27년간 외상. 최고회의대의원. 경제학박사. 34세에 주미대사 역임. 권력서열 제3번.
「흐루시초프」수상은 그를 『외교의 백과사전』이라고 지칭한 일도 있었다. 그가 소련 외무성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1939년 「몰로토프」외상시절이었다. 그 동안 미국의 대통령은 9명이 바뀌었고 국무장관은 14명이 지나갔다. 세계 외교의 「뒤의뒤의 뒤」까지도 알만한 경륜이다.
그의 됨됨이를 평한 「흐루시초프」의 유명한 얘기가 있다. 『「그로미코」는 바지를 벗고 얼음장 위에 몇 달 동안 앉아있으라고 하면 그대로 할 사람이다.』
그의 장수(정치생명) 비결은 미국의 「애치슨」국무장관 회고록에 따르면 『불가해한 얼굴표정(an impenetrable mask)』이다. 그리고 일에는 나이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성실파. 그 음험한 소련도 그의 관록엔 손을 든 상태다.
그보다 나이가 한 살 적은 「레이건」미국대통령은 지금 그를 상대로 뚝심을 겨루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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