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삼성화재배세계바둑오픈] 포석 감상-유장함과 두터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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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제10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8강전 하이라이트>
○ . 유창혁 9단 ● . 이창호 9단

유창혁은 이창호보다 아홉 살 위지만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다. 유창혁은 1988년 당대 무적이던 조훈현 9단을 꺾고 대왕 타이틀을 따낸다. 이창호는 89년 KBS 바둑왕전에서 우승하며 '14세 우승'이란 전무후무의 기록을 세운다. 길고 길었던 15년 조서(曺徐) 시대는 이렇게 끝장난다. 그리고 이들은 조훈현-서봉수와 함께 한국바둑의 4천왕이 되어 세계를 제패한다. 마치 초원을 정복한 몽골처럼 변방의 한국은 그렇게 일어섰다. 4천왕은 이제 신 4천왕으로 대체됐지만 자랑스러운 역사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한 시대가 지난 뒤, 39세의 유창혁과 30세의 이창호가 삼성화재배 8강전 길목에서 만났다.

장면=유창혁 9단은 백 바둑이 유장하다. 8의 느릿한 협공도 그런 호흡을 느끼게 해준다. 10으로 짚은 다음 12로 둔 수가 책략이 담긴 수. 흑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이창호 9단의 흑 바둑은 두텁기로 소문이 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며 다음 수를 예상해보자.

참고도1=흑1로 느는 것은 백이 원하는 구도. 백4로 끊겨 피곤한 싸움이 된다.

참고도2=흑1로 머리를 두드리고 싶다. 그게 돌의 기세라는 느낌도 든다. 그러나 백2의 자세가 굳건하고 흑3의 후수가 불가피하다. 백4의 요소를 빼앗기게 된다.

장면2=이창호 9단은 그냥 13으로 뒀다. 감정을 죽이며 21까지 천천히 균형을 잡고 있다. 20은 놓칠 수 없는 곳. 우변 A가 기막힌 곳이긴 하지만 흑B를 당하면 좌변이 허물어진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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