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40) 제80화 한일회담(239) 마무리 전략손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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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나는 부임한지 채 1개월도 못된 11월15일밤 귀국했다. 박대통령에게 우선 일본국내정세의 변동에 관해 설명하고 또 앞으로 있을 한일회담에 관한 우리측 전략을 최종적으로 손질하기 위해서였다.
환경은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사또」수상은 11월10일 가진 첫회견에서 『한일문제는 현재 거의 교섭이 막바지에 와있고 최후의 손질만 남아있다』고 낙관했다.
취임6개월을 맞은 정일권국무총리도 11월14일 회견을 통해『이제 일본에 새로운「사또」내각이 취임했고 「사또」수상 자신이 한일문제를 타결하겠다고 성명했으니 우리 정부는 고자세도, 저자세도 아닌 평자세로써 이 문제를 추진해가려고 한다』고 천명했다.
「사또」수상은 솜씨있는 끝내기만 할 단계이며 정총리는 평자세로 그 끝내기에 응하겠다고 말해 한일수뇌진의 확고한 결의를 과시했다.
귀국전에 가진 회담을 통해 「시이나」외상도 한국측이 국내의 반일기운을 무마키 위해 요구한 거물급사죄사절의 파한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한일회담의 조기타결을 위해서라면 한국측이 바라는 대로자신이 방한할수도 있다고 전진적으로 나왔다.
그래서 나는 11월중 또는 연내에 방한할 것을 요청하고 이 요청을 수락한다면 바로 이동원외무장관 명의의 공식초청장을 수교하겠노라고 다그쳤다.「시이나」외상은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곧 있을 그 자신의 워싱턴방문, 그리고 12월의 국회회기 등을 이유로 내세워 내년 초에나 고려될 수 있겠다고 주춤했다.
나와 그는 그렇지만 이날 회담을 통해 가능한 빠른 시일 안에 중단된 회담을 재개키로 하고 내가 박대통령을 만나 최종협의를 한 후 다시만나 일정을 확정키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박대통령은 일본의 정권교체에 지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나는『지금의 일본정국이 대한관계에서 가장 우호적이며 유리한 상황 하에 있다』고 진언하고「사또」정권의 성격이나 대외정책의 역점, 「사또」수상을 떠받치는 배후세력의 동향 등에 나름대로 관찰하고 분석한 바를 상당히 장황하게 설명했다.
나는 구체적 전략문제는 정총리·이장관 등도 합석한 고위협의회에서 말하겠다고 하고 『다만 이자리에서 꼭 지적하고싶은 것은 정부가 대일 경제협력의 확대를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6억달러+α」액수에 평화선을 팔아먹었다는 국민들의 비판을 다소라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는 상업차관 몫으로 거액을 끌어들여 단시일 안에 조국근대화를 달성하는 것도 한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상업차관활용방안은 나중에 상술하겠지만 재계의 거물 한분이 나는 물론 정부요로에 제시한 것이었다.
여담이지만 나는 이날『부임한지 얼마 안되나 민단관계로 지방을 시찰해보고 농촌에 숲을 이룬 텔레비전 수상기 안테나를 보고 풍요한 일목농촌만큼 우리도 열심히 노력해 잘 살아야겠다』고 일본농촌관찰인상을 얘기했었다.
70년대초 주미대사시절 업무협의차 귀국하니 박대통령은 나를 농가개량사업을 하는 현장으로 데리고가『옛날에 김대사는 일본농촌의 풍요로움을 얘기했는데 지금 보는 우리농촌은 어떠냐』고 물어 그 기억력의 비상함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그만큼 박대통령은 우리가 못산다는데 대한 촌평에 한을 느꼈던 것이 아닐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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