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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황인용 방송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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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

왜 사냐건

웃지요.

- 김삼용(1902~51) ‘남으로 창을 내겠소’ 중

자연에 묻혀 사는 무소유의 삶
각박한 마음 달래는 힐링 송

읽는 순간 짧은 구절 속 함축적 의미가 가슴에 팍 와 박히는 시가 좋다. 입에 착착 붙고 잘 외워지는 그런 시. 이 시가 그렇다. 학창시절부터 즐겨 외웠다. 바쁘게 살면서 한동안은 제목과 마지막 구절만 입가에 맴돌다가, 7~8년 전 다시 꺼내 읽고 늘 외우며 다닌다. 특히 차가 밀리고 짜증이 날 때 크게 소리 내 읽으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내게는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일종의 힐링 송이다.

 나처럼 굳이 시골 출신이 아니더라도 자연으로 돌아가고픈 회귀 본능을 일깨워주는 시가 아닐까 싶다. 자연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자연의 일부라 여기며, 탐욕에 매몰되지 않은 소박한 삶. 밭도 소가 잠깐이면 갈 수 있는 작은 넓이(‘한참갈이’)에, 왜 사냐고 물어도 그저 웃을 뿐이란다. 당대 엄청난 지식인이었던 시인이 마치 촌부 같은 감성으로 써 내려간 시 구절구절에서 인생에 대한 깊은 달관이 느껴진다.

 내게 작곡 능력이 있었다면 진작에 노래로 만들었을 것 같다. 김광석 같은 가수가 살아서 곡을 만들고 불러주었더라면 어땠을까.

황인용 방송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