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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南通新이 담은 사람들] 회사원에서 예술가로, 내 도화지는 일회용 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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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江南通新이 담은 사람들’에 등장하는 인물에게는 江南通新 로고를 새긴 예쁜 빨간색 에코백을 드립니다. 지면에 등장하고 싶은 독자는 gangnam@joongang.co.kr로 연락주십시오.

해외에서 더 유명한 ‘컵 아트’ 작가 김수민(34)씨.

 원래 그는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대기업 직원이었다. 매일 똑같은 일상, 하늘 한번 제대로 볼 수 없는 팍팍한 생활을 2년째 이어가던 어느 날, 그는 회사를 나왔다. 그림이 그리고 싶었다. 번듯한 직장에 다니던 아들이 ‘그림쟁이’가 되겠다고 하자 부모님은 펄쩍 뛰었다. 그래도 하고 싶은 걸 하며 살겠다는 그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퇴직 후 일러스트 학원을 다녔다. 2년 후 마포구 아현동에 작은 작업실을 냈다. 하지만 일감은 거의 없었다. 근처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 한잔을 사서 작업실로 가 습작에 몰두하는 나날이 계속됐다.

 “그러던 어느 날, 뒤를 돌아보니 한쪽 벽면이 스타벅스 컵으로 가득 채워져 있더군요.” 쓰레기 버리기가 귀찮아서 벽면에 포개놨던 컵이 수십 개로 불어났던 것이다. “컵에 그려진 ‘세이렌’(스타벅스 로고 속 ‘바다의 요정’)들이 저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죠. 그때부터 컵 위에 제 심정을 담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제가 미처 몰랐던 제 마음이 컵에 그려진 그림 속에 있더군요.”

 그는 컵에 그린 그림을 인스타그램·트위터·페이스북 등 SNS에 올렸다. 해외에서 먼저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글로벌 브랜드인 스타벅스의 세이렌 로고를 변형한 작품들이 먼저 관심을 끌었다. 허핑턴포스트 재팬, 대만의 디자인 관련 잡지, 미국 광고 전문지 ‘애드위크(ADWEEK)’ 같은 해외 매체에 ‘컵 아티스트’로 소개됐고 그의 SNS 구독자 수도 1만 명을 넘어셨다. 5번의 오프라인 전시회도 열었다.

이름이 알려지면서 일감도 늘었다. 그래도 컵 아트는 계속하고 있다. 스타벅스 로고를 변형한 작품이 많지만 스타벅스 회사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지난 10일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컵 아트를 “내 생각을 표현하는 소통의 도구”라고 했다. 컵에 그리는 그림은 돈을 벌려는 목적이 아니다. 그냥 그리고 싶은 걸 그린다. 그는 “컵에 그리는 인물들은 ‘나’이며, 동시에 내 작품을 보는 모든 사람들”이라며 “내가 살면서 체험하고 느낀 것들을 자유롭게 표현했을 때 사람들도 가장 많이 공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드라마 ‘미생’의 캐릭터를 컵에 그려 넣은 적도 있다. 당시 미생의 촬영 장소로 쓰인 회사의 건물은 그의 현재 작업실(중구 만리동) 맞은 편에 있다. 그가 다니던 대기업도 바로 그 회사 건물에 있었다. 그의 컵 아트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직장인들의 생활은 당시의 경험이 녹아 있다.

 “컵 아트 작품에 대단한 의미를 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쓰고 버려지는 일회용 컵에 메시지를 담아 살아있는 작품으로 만든다는 건 즐거운 작업이에요.”

만난 사람=김소엽 기자 kim.soyu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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