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후계를 정하십시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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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66년 여름이래 공화당에선 박 대통령 이후에 대한 구상들이 나오고 있었다. 후계자 논의는 박 대통령의 입장을 중심으로 몇가지 가능성을 말하고 있었다.
그 가능성 안에는 야당에 한번쯤 넘기는 것, 또는 충실한 임시 관리인에게 권력을 넘겼다가 재집권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어느 것이건 권력 이행을 전제로 했기에 후계자 논의는 때 이른 것은 아니었다. 이 경우 첫째는 5·16의 적자 김종필 당의장이 후계자가 되는 경우였다.
공화당의 옛 주류계에 떠받쳐져 있던 김 당의장은 그때로선 후계자로 단연 선두였다. 그랬지만 4년 후를 생각할 때 그 전망은 확실치 않았다. 과거의 비주류계는 청와대의 측근진과 연합, 신주류를 이루어 김 당의장을 거미줄처럼 죄어 매고 있었다. 그들은 공화당의 P-K라인 (박정희-김종필 체제)은 무너졌다는 전제 아래 이효상 국회의장을 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그들은 다른 한편에선 내각책임제를 가미하는 이른바 이원집정부제 개헌도 검토하고 있었으며 그런 구상은 야당의 유진산 계열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또 하나는 정일권 국무총리였다. 정 총리는 김 당의장이 후계자선에서 탈락할 경우 옛 주류계에 의해 핀치히터로 등장 할 수 있으리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박 대통령에 의해 임시 관리인으로서 선택 될 수 있으리라는 관측이었다.
정구영씨는 그날 박 대통령에게 공화당 안에서 수군거림으로써만 떠돌던 이같은 후계자 논의를 펼쳐 보였다. 정씨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자연인 이름을 말하지 않겠읍니다. 당내에 지금 제3기 대통령으로 지목되는 몇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그들 자연인의 이름을 제 입으로는 말하지 않겠읍니다만 각하가 그 자연인 가운데 아무개 같으면 나하고 마음이 통하고 그만한 능력도 있으니 3기 대통령에 나는 그 사람을 밀겠다 하는 사람을 정하고 당내의 여론도 그 방향으로 이끌어 가겠다는 생각을 하셔서 국회의원 공천 등 문제도 그 사람하고 의논해 가지고 결정하십시오. 미리 두분이 호흡을 같이하는 기풍을 지금부터 심어주셔야 합니다.
2기 대통령 출마 전에 또 한가지 특히 강조할 점은 각하가 2기 대통령으로 취임해 1년 남짓 지나면 3선 개헌설이 반드시 나옵니다.
이 대목에서 박 대통령은 나를 쳐다보면서 「3선 개헌이오?」라고 했다.
-나오구 말구요…. 이것은 어떤 사람이 하느냐 하면 각하의 그늘 밑에서 권력을 마음대로 누리고 1기 2기 임기 기간 권력을 누리고 치부를 한 사람들, 특혜 조치를 받아 가지고 돈을 많이 번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그룹이 되어 가지고 각하로 하여금 3선 개헌하라고 감언이설로 조르는 사람이 생길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나라의 예도 있지만 비근한 예로 이승만 대통령의 3선 개헌이 있읍니다. 사사오입 개헌 당시 3선 개헌을 주장한 이유는 북한의 김일성이 남침하니까 대비책으로 강력한 영도력이 필요하다. 이 대통령 외에는 강력한 정치 지도력을 발휘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첫째 이유로 내세웠습니다. 둘째는 조국의 근대화·공업화를 추진해야겠다. 이것이 급한 명제다. 세째로는 통일 성업을 할 사람은 이 대통령 밖에 없다는 세가지 이유를 들어 3선 개헌을 추진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불과 10여년 전에 체험을 하지 않았습니까. 각하가 2기 대통령에 당선되어 가지고 1년만 지나면 각하의 주위에서 권력을 오래 누리던 사람, 특혜를 받아서 돈을 많이 모은 사람들이 각하에게 감언이설로 진언할 것입니다.
각하는 어떤 경우든지 과감하게 뿌리칠만한 굳센 각오를 가지고 2기 대통령에 출마해야지 그렇지 않고는 각하가 역사상의 누명을 뒤집어쓰게 됩니다. 그것은 이 대통령의 전철을 밟는 일이 됩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재미있는 말씀을 들었읍니다.」 그러면서 자기 의견을 말하려 해요.
오늘 각하한테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습니다. 각하께서 나는 그런 생각을 한일이 없다든지 할 이치가 있겠는가 하는 그런 언질을 들으려고 온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 늙은 사람이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든지 공화당 창당에 참여한 한사람으로 각하를 제3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시켜 심혈을 기울여 온 나로서 각하로 하여금 2기 대통령까지 당선되고 그 뒤에 유종의 미를 거두고 각하를 훌륭한 정치인이 되게 하는 희망에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당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는 두가지 의미에서지 여기서 각하께 선생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이런 말 듣고 싶지 않습니다. 국가 원수한테 그런 언질을 받으려고 왔다면 내가 불손한 사람이 됩니다. 예의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이 문제는 그대로 들어 두시고 이 다음에 각하가 조용할 때에 틈이 있으면 그때 이 말의 취지를 반추해 보십시오. 정구영이가 그때 말하더라, 이것이 과연 그렇게 될까, 각하가 앞날을 결정하는데 고려가 된다면 무상의 영광이지 결코 이 자리에서 언질을 들으려고 온 것은 아닙니다. 아무 말씀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때 내 마음은 진실로 그랬다. 박 대통령이 몇번 말하려는 것을 못하게 막았다.
그 당시 공화당 안의 정세로는 박 대통령의 뒤를 승계할 사람으로는 김종필씨다. 이런 말도 주류파 일부에서 있었다. 정일권씨다. 그분이 미국과의 관계도 좋고 군부의 지지도 있다는 그런 말도 있었다.
또 다른 일부에서는 이효상 국회의장이 적임자라는 말도 있었다. 심지어는 이런 분들이 그것을 노리고 있다는 말도 유포되고 있었다. 그날 밤에 내가 한말은 당내에 자전타천 하는 몇사람을 들어 아실 것입니다. 각하께서 제3기 대통령에 능히 지목될 수 있는 사람을 골라서 7대 국회를 그분하고 의논해 처리하십시오. 왜냐하면 뭐니뭐니해도 국회에 적을 두어야 정계에서는 발언권이 있다.
즉 7대 국회에서 다수 의석을 가진 정당이 대통령 선거에서 유력한 당이 될 것이다. 7대 국회에서 다수가 지지하는 자를 제3기 대통령으로 각하가 지목해서 바통을 넘기실 수 있도록 아무 혼란 없이 평화적으로 스무드하게 정권이 교체되도록 그분하고 의논해서 하십시오.
그런 말을 진언했었다. 그분이 즉석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을 제지하고…. 물론 남북 관계·미소 관계·중소 관계는 자유롭게 얘기했지만 후계자 선임 문제는 그분에게 함부로 얘기 못하고… 그것이 약 3시간 걸렸어. 깜깜해 지도록 여러번 차를 날라 오게 해 마시면서 단둘이 아무도 접근 못하도록 하고 심각하게 얘기를 했었지.
이는 내가 조국에 대한 충성, 이 나라를 민주주의 국가로 이끌어 나간다고 하는 내 적성에서 없는 두뇌를 짜 그분께 진언했다. 그분도 이때 감개 깊게 내 진언을 물었다. 그때 그분의 행동, 그분이 자기 자리에서 일어서서 잘 가라고 하더니 최대의 경의를 표하면서 도어를 열어주고 다시 현관까지 나와 문을 열어주고 악수하고….그 날 그분은 매우 의의 있게 들었는지, 자기에 대한 충언이라고 들었는지 문밖까지 나와서 두번 세번 잘 가라고 인사하고 헤어졌다.
66년11월28일의 일이다. 날짜도 시간도 잊지 않는다. 나는 진정으로 사심 없이 말씀을 드렸기 때문이다.
그날은 대통령의 반응을 애써 회피했지만 대답을 듣는 일은 예상외로 빨리 왔다. 그로부터 4개월쯤이 지난 이듬해 봄 박 대통령 스스로가 그날 빔을 상기시켰다. 「작년 연말에 선생님 저에게 하신 말씀이 계셨죠.」 정씨는 갑작스런 대통령의 말에 11월28일은 떠올랐지만 화제가 통일 문제의 연장이어서 그날 밤 얘기 중의 어느 대목인지가 분명치 않았다. 「예? 무슨 말씀이던가요?」 그러자 박 대통령은 밝게 웃으면서 「아! 선생님 그때 71년 선거에 관해 말씀을 하신 것 있었잖습니까」고 했다. <주 2∼3회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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