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과거사위 진상조사 믿을 만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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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1991년 김기설씨 분신자살 사건에 대해 검찰이 유서 대필과 자살 방조로 미리 결론을 내놓고 무리하게 수사를 진행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재판 기록을 열람하지 못한 상황에서 내린 신빙성 없는 결론이라고 반박했다. 검.경의 수사권 다툼이 과거사로 옮겨진 느낌이다. 경찰 과거사위와 검찰이 서로 옳다고 벌이는 진흙탕 싸움을 보는 국민은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

경찰 과거사위 결론의 타당성에 의문이 든다. 검찰의 수사 기록도 확인하지 않고 어떻게 진상규명을 할 수 있는가. 더구나 유서 원본에 대한 필적감정조차 하지 않았다는데 대필이 아니라고 추정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검찰 수사의 잘못을 지적하려면 모든 자료를 충분하게 검토한 뒤 판단하는 게 원칙이다. 검찰이 자료 공개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추정.잠정 결론을 내린 것은 전시용 성과를 올리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검찰을 설득해 기록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어야 한다.

과거사위들의 봇물성 생색내기 진상 발표에 국민은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조사기관이 기록 검토 후 엇비슷한 보고서를 내놓기 때문이다. 국정원 과거사위가 조사한 민청학련.인혁당 사건은 이미 의문사위 등에서 용공 조작이라는 결론이 내려져 재심이 청구되거나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은 바 있지 않은가. 사건 발생 당시 시민단체가 주장한 방향으로 뚜렷한 증거도 없이 결과가 뒤집히거나 정권과 코드가 맞는 결론이 도출되는 행태 또한 꼴불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