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교수 무리수 두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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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근배 전북대 교수 등 학계에서는 "미국.영국보다 먼저 줄기세포 허브를 설립, 이 분야를 선점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단순히 사이언스에 논문을 한 편 더 게재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허브를 설치하려면 줄기세포를 많이 확보해야 한다. 황 교수팀은 일단 줄기세포 허브를 만들고 나면, 그때부터는 집중된 연구비를 활용해 줄기세포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고, 다음 단계의 논문을 작성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을 수 있다.

연구팀 내의 의사 소통이 제대로 안 됐을 가능성도 있다. 서울대 생명과학부의 한 교수는 "실험실 내 연구팀들 사이에 의사 소통이 잘 되지 않았던 것이 근본 원인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황 교수팀 내 젊은 연구원들이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데이터를 조작하고, 황 교수 등을 감쪽같이 속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이 경우 초기 단계, 혹은 논문이 게재된 이후까지도 황 교수가 몰랐을 수도 있다.

또 11개 줄기세포의 보관 과정에서 실수나 사고로 훼손됐지만 연구원은 황 교수에게 진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을 수 있다. 거의 군대처럼 강행군을 하는 실험실 분위기에서 실험이 예정대로 진행되지 못했다고 보고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황 교수는 줄기세포 11개가 확보된 것으로 알고 이를 바탕으로 논문을 작성토록 지시했고, 황 교수는 사실을 모른 채 피츠버그대 제럴드 섀튼 측에 보냈을 수도 있다.

뒤늦게 논문 검토 과정에서 황 교수가 조작 사실을 알았지만 '엎질러진 물'이라거나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안이하게 판단해 논문을 철회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런 추정에도 문제는 있다. 황 교수팀 내에서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부분 혹은 전체 연구팀이 모여서 데이터를 놓고 세미나, 토론을 벌였을 것이다. 대외 활동에 바쁜 황 교수가 아니더라도 강성근.이병천 등 젊은 교수들이 참석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학계에서 제기한 여러 가지 의문점이 당시에도 제기됐을 것이고, 당연히 걸러졌을 것인데, 조작한 데이터가 그대로 논문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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