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장화제] 고속도 폐터널이 '벼 냉장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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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다니지 않는 고속도로 터널이 고급쌀을 만드는 '벼 냉장고'로 변신했다.

남해고속도로 옛 부산방면 김해터널에 최근 벼 2만5000여 가마(40㎏)가 쌓였다.

연말까지 8000여 가마가 더 반입돼 19억원어치가 보관된다. 터널은 영농조합 '경남 친환경 쌀 유통사업단'이 김해시로부터 3년간 무상으로 빌렸다. 이 영농조합은 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농업클러스터 시범사업단 20곳 중 하나.

터널은 연중 섭씨 15도 안팎을 유지, 보관된 벼의 변질을 막아준다.그래서 1년이 지나도 햅쌀 맛을 낸다.

[송봉근 기자]

영농조합 김기상(58) 국장은 "온도가 일정한 차가운 장소의 벼는 수면상태를 유지해 산화가 거의 진행되지 않아 수확 때와 비슷한 맛을 내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도로 폐터널을 벼 저장창고로 이용하기는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곳에 보관된 벼는 김해, 창녕, 산청, 함양,합천, 거창 등 7곳의 친환경 재배단지로부터 수매했다. 이들 단지는 자운영, 오리, 메뚜기, 우렁이 등을 이용해 벼를 재배하며 농약을 아예 사용하지 않거나 적게 사용한다. 이렇게 생산된 벼는 일반 벼(40㎏ 가마당 4만1000원) 보다 6000~1만1000원 비싸다.

이들 벼는 농업회사 신어산 RPC 등에서 이온쌀로 찧어 일반 쌀 보다 30% 가량 높은 값에 판매된다.

이온쌀은 1차 산성이온수로 살균처리, 세균을 없앤 뒤 알칼리이온수로 표면가공을 해 신선하면서 오래 저장할 수 있고 밥맛이 좋은 것이 특징이다.

이온쌀 기술은 ㈜PN Rice 나준순 사장이 인제대 생명과학대학과 산학협동으로 개발했다.

영농조합은 이온쌀을 냉장차로 운반하고 판매장에서도 냉장고에 보관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이온쌀은 홈플러스 등에서 판매되고 있다.

벼 터널은 길이 440m 2차로로 벼 12만 가마(연 평균 5만명 소비량)를 보관할 수 있다.

벼 터널은 나준순 사장이 2003년 초 아이디어를 낸 뒤 경남도 농업정책과와 공동으로 건설교통부, 국무조정실 등을 설득해 빌렸다.

정부로부터 관리권을 넘겨 받은 김해시도 흔쾌히 제공했다.

영농조합은 지난 봄부터 동명대에 맡겨 터널속 온도와 습도를 측정하고 있다. 여름철 습도가 높아질 것에 대비해 습기제거 장치도 설치할 예정이다.

'경남 친환경 쌀 유통사업단'의 사업에 국비(5억5000만원)와 지방비(경남도 5억원 등)12억원이 지원됐다.또 시중은행으로서는 부산은행이 처음으로 벼를 담보로 9억원을 빌려줬다.

경상대, 인제대, 동명대, 밀양대와 삼성경제연구소 등 참여 기관이 34개 곳이나 된다.

나 사장은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한 벼를 저온터널에 보관한뒤 첨단기술로 도정해 냉장 유통하면 밥맛이 좋다"며 "이온쌀은 국제적으로 경쟁력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또 "김해터널 크기의 저온창고를 건립하려면 70억원 이상 들고 연간 운영비도 수억원이 필요하다"며 "폐터널을 벼 창고로 활용해 쌀 경쟁력을 높이는 모범사례"라고 평가했다.

글=강진권 기자 <jkkang@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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