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성 소비의 증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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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간 소비지출이 최근 들어 과도하게 늘어나는 현상은 두 가지 측면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그 하나는 그것이 전체적인 경제동향이나 일반 소비지출 수준과 걸맞지 않은, 다소 이례적인 과열현상이라는 측면이다. 1·4분기 이후의 여러 총량지표들, 예컨대 통화지표나 투자 연관 지표들은 경기의 과열이라기보다 오히려 정체 쪽에 가깝다.
특히 연초 이래의 지속적인 통화긴축으로 통화·총통화 가릴 것 없이 모두 안정선에서 머물러 있고 수출 연관 산업을 제외한 일반 내수산업에는 경기침체나 자금압박을 호소하는 중소기업들이 여전히 많은 분포를 보이고 있다.
경기 연관 지표라 할 경상수지에서도 1·4분기의 경상적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오히려 줄어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민간 설비투자동향 역시 어느 모로 보나 경기과열을 우려할만한 근거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처져있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유달리 소비지출, 특히 사치성·향락성 소비가 현저하게 늘고 있다는 사실은 경제의 편의성향 내지는 불균형을 나타낼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1·4분기 소비지표에서 나타난 두드러진 현상은 자동차, 가전제품 등 내구소비재 지출부문이 현저하고 유흥음식비 지출과 육류·청량음료 등 식료품비 지출이 빠른 증가세를 보인 점이다.
물론 이런 변화들만을 토대로 경기과열을 점친다면 다소 성급한 판단이 될 것이다. 특히 전반적인 경기수준과 함께 고려할 때 더욱 그렇다.
그러나 바로 이 점이 일부 사치성 소비의 과열을 우려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투자와 일반 내수산업의 부진을 수반한 소비경기만의 과열은 결국 민간투자의 방향을 왜곡시키거나 자원의 배분을 낭비적인 방향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높아질 것은 자명하다.
전반적인 산업투자의 수익율이 떨어지거나 수익성 호전의 기대감이 결여된 상태에서 사치성 소비경기가 계속 진정되지 않는다면 부족한 투자재원이 비생산적 서비스·소비산업으로 누출될 것을 내다보기는 어렵지 않다.
이런 기형적 불균형 상태는 원천적으로 경제의 허리부분을 뒷받침하는 제조업 일반의 침체와 무관하지 않으며 나아가서는 투자와 소비를 뒷받침하는 금융구조의 기형학현상과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특히 후자의 문제는 여전히 국내 총유동성이 높은 수준이 머물러있는 데다 그 상당부분이 정상적인 금융유통 경로에서 빠져 나온 채 단기성 대기자금으로 남아있는데 큰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도금융의 신용창출이 의존하지 않는 이런 거액의 유동성을 효과적으로 흡수하기 위해서는 금리구조 현실화뿐 아니라 금융산업 일반의 균형 잡힌 정상화로 대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기반의 조성과 함께 사치성 소비에 대응하는 여러 조세정책을 병행시킨다면 일부 소비의 과열에 따른 부작용은 크게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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