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7)한국 정정에 촉각-제80화 한일회담(21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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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김종필씨가 「자의반 타의반」의 외유서 떠날 무렵 한일간에는 배의환-「스기」수석대표 사이에 예비회담이 진행되고 있었다. 당초 김-「오오히라」회담에서 청구권문제를 매듭 지을 당시 두사람은 다음의 타결 대상으로 「평화선-어업회담」을 상정하고 있었다.
일찌기 박-「이께다」(지전) 회담때 「일본이 청구권에서 양보하면 한국은 평화선에서 신축성을 보인다」고 한 약초가 그 배경이었다. 따라서 만사가 순조로우면 두사람은 다시 만나 평화선 문제를 결판낼 요량이었다.
박의장은 김-「오오히라」메모를 물론 두말없이 접수했지만 일본쪽은 사정이 좀 달랐다.유럽전쟁에서 돌아온 「이께다」수상은 『내각내 대장성과 자민당일부의 동의를 받기 어려울만큼 파격적인 양보』라는 이유로 일단 처음 김-「오오히라」합의의 수락을 미뤘다. 그러나 이는 야당과 여론을 의식해 표면상 한번 뜸을 들여보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께다」수상은 메모가 만들어진지 한달후쯤 결국 한국측의 차근과 자민당내 친한파그룹의 엄호로 김-「오오히라」합의서 기정사실로 수락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국측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해를 넘긴 63년초 민정이양 준비를 서두르는 과정에서 김종필씨가 최고회의내 선배군인들의 배척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그런 최고회의 내부 알력으로 한일문제에 적극적으로 손을 쓸 여유가 없다.
동경에서는 이번국내상황에도 불구하고 1주일에 한번정도 예비회담이 열리곤 했지만 회의진척보다는 한국의 국내상황이 주된 화제로 올랐다.
한국에 대표부를 두지않은 일본으로서는 예비회담이라도 열어 우리 대표들로부터 한국 정정에관한 정보를 얻지 않으면 안될 형편이었다.
한일예비회담은 말하자면 일본측의 한국 정석파악을 위한 중요한 창구였다.
일본측 대표들은 회담이 열릴때마다 한국의 국내문제에 넌지시 관심을 표명하면서 특히 김씨의 거취에 신경을 쓰곤 했다.
회담에서 양국대표들간에 오간얘기를 통해 당시의 분위기를 살펴보자.
▲「우시로꾸」(후궁) 대표=한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일본정부가 야당의 강력한 반대와 여당 일부의 신중론을 뿌리치고 한일회담을 추진하고 있는만큼 한국도 좀더 접근태도를 보여주었으면 한다. (중략) 오늘 조간을 보니 공화당발기인대회가 잘 안되는 것 같던데….
▲최영택참사관=지금까지 김종필씨를 선두로 한 민간발기인폭과 김동하씨를 중심으로 한 군출신 발기인들간에 의견대립이 있었다. 그러나 박의장이 양쪽의 발기인 수를 똑같이 균형을 맞추도록 지시해 원만히 수습됐다.
▲「스기」(삼도조)수석=신문에 보면 군과 민간인의 대립이라고 돼있던데 군이라고 한 것은 군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군출신을 말하는가.
▲배수석=그렇다. 군대는 이번 정치불안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있다.
▲「우시로꾸」=김부장은 발기위원장을 아주 그만두는가.
▲최참사관=우선 일개 위원으로 있게된다. 그러나 대회에서 그를 위원장으로 선출하게되면 위원장직을 다시 맡게 될지도 모른다.
▲「우시로꾸」=일본은 지금껏 김부장을 상대로 교섭을 해왔기때문에 김부장 실각보도로 앞으로 반김부장파와 교섭을 해야되지않나 우려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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