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적표-GNP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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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나라의 경제가 얼마나 성장했고 그 성장의 내용은 무엇이었나를 알아보기 위해 고안된 경제의 「성적표」가 곧 국민총생산(GNP=Gross National Product) 통계다.
한나라의 경제가 어떻게 움직였는가를 숫자적으로 나타낸다.
어느 산업이 어느 물건을 얼마만큼 만들고 그것이 어떻게 쓰였으며 또 그 소득이 어떻게 분배되었는지도 알 수 있다.
GNP가 경제의 움직임을 거시적으로 나타내기 때문에 바로 다음에 취할 정책의 좋은 척도가 된다. 예를 들어 성장률이 너무 낮으면 건설경기를 부추기고 금리를 크게 내리는 등의 부양책을 쓰고, 너무 과열되면 진정책을 쓴다.
GNP는 3개월마다 한국은행에서 집계해 발표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성장률이 7∼8%선을 넘으면 과열, 그 이하면 침체라고 볼 수 있다.
GNP 통계가 나타내는 나라 경제의 「양적인 성장」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기업의「외형증가」와는 전혀 다르다. 한 기업이 1천만원 어치의 원료를 다른 기업으로부터 사서 이를 가공해 1천5백만원 어치의 물건을 만들어 팔았다면 이 기업의 외형은 1천5백만원이지만 이 기업이 원료 값을 빼고 추가로 더 생산해 낸, 이른바 「부가가치」는 5천만원에 지나지 않는다.
GNP 통계가 측정하는 경제의 성장은 바로 이같은 부가가치의 증가율이므로 GNP와 기업의 외형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한사람의 키와 다른 사람의 체중을 직접 대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부가가치라는 것도 결국 화폐가치로 셈하게되므로 실제 생산이 크게 늘지 않아도 물가만 오르면 GNP 규모도 덩달아 크게 늘게된다.
따라서 물가 오른 것을 감안하지 않고 셈한 「경상GNP」와 물가 오른 것만큼을 빼고 계산한 「불변GNP」는 그 용도가 서로 다르다. 1인당 GNP 등을 따질 때는 경상GNP를 쓰고, 경제성장률을 재볼 때는 같은 가격수준에서 비교를 해야하므로 불변GNP를 쓰게된다.
1인당 GNP는 흔히 각국의 국민생활 수준을 비교하는 기준이 되지만 이것이 곧바로 우리의 피부에 와 닿는 한사람 당 「소득」은 아니다.
우리가 쓸 수 있는 소득은 GNP에서 세금 등을 뺀 후 주머니에 넣고 쓸 수 있는, 이른바 개인 가처분소득인데 1인당 GNP보다 훨씬 적다.
지난 82년의 1인당 GNP는 1백31만6천6백87원이었지만 1인당 가처분소득은 1백20만6천원이었다.
한편 GNP는 글자 그대로 「국민」총생산이므로 우리나라 기업이 외국에 진출해 벌어들이는 돈도 모두 잡히는 대신 외국 기업이 우리나라에서 생산한 부가가치는 빠진다. 「영토」가 아니라 「국적」위주인 것이다.
반면 국적보다는 영토를 중시해 우리 기업이 외국에서 번 것은 빼고 외국 기업이든 우리 기업이든 국내에서의 경제활동 결과를 모두 셈한 것이 국내총생산(GDP)이다.
83년의 GNP 총 규모는 58조2천97억원이었는데 GDP 총 규모는 59조4천5백45억원으로 GNP의 1백2%쯤 된다. 우리 기업이 외국에서 버는 것보다 외국 기업이 우리나라에서 버는 것이 더 많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GNP 통계는 매우 유용해 「2O세기 최대 발명중의 하나」라고도 말하여지지만 GNP 통계는 그것 하나만으로 국민경제의 성과와 수준을 모두 평가할 수 있는 만능의 지표는 아니다.
한 예로 1인당 GNP가 2만 달러 가까운 중동의 산유국에 함께 사는 왕족과 초라한 유목민의 차이를 GNP 통계는 설명해주지 못한다. 공해·범죄 등도 마찬가지다.
또 와우아파트를 완전히 헐어버리는 데 든 비용은 GNP에 잡히나 집 앞마당에 상치를 심어 먹는 일은 GNP에 잡히지 않는다. 어느 쪽이 더 생산적이냐 하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다.
또 GNP 통계는 「시장」을 통해 거래되는 것만 포착된다. <김수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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