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화 한일회담(210)-김부장-일재계대표 환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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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62년 9월 하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은 그의 청구동 자택에서 10여명의 일본 경제인들과 환담하고 있었다. 이들은 군사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5차5개년 계획의 참여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내한한 일본 재계대표들이었다.
김부장은 이자리에서 한국의 혁명정부가 경제건설을 제1의 목표로 삼고 있으며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웃 일본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기탄 없이 털어놓았다. 김부장은 그러면서 『일본의 대한협력은 일본경제를 살찌우고 더 나아가 일본 안보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김부장의 얘기는 진행중인 한일회담으로 옮겨갔다.
『한일양국의 악수는 비단 양국만을 위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과거의 상처를 잊고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하려는 것은 무슨 대단한 목전의 이익이 있기 때문이 결코 아니요.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청구권」만 하더라도 우리가 당신들한테 아무리 많은 액수를 받아낸들 과거의 상처와 치환될 수는 없다는 것이 우리 국민 감정이오. 다만 새로운 장을 여는 것이 중요하고 우리는 그것이 역사의 발전이라고 믿기 때문에 과거 감정도 자제하고 있는 것이요. 어느 쪽이든 더이상 망설인다면 양족 모두 좋은 기회를 잃고 말뿐입니다』
유창한 일본말이었다. 비록 군인의 신분이었지만 목소리에는 유세장에 나간 정치인처럼 힘이 실려 있었다.
일본대표들은 거개가 60이 넘은 사람들이었지만 한국의「젊은 실력자」의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무렴 김종필씨의 이름은 이미 일본 조야에 꽤 알려져 있었다. 일본 사람들은 JP(김종필의 이니셜)를 「매력 있는 인물」로 여기고 있었다. 그률 만난 일본 정계와 재계 요인들은 『젊지만 얘기가 통한다』『박력이 있고 쾌활하며 일본에 대해서 아는 것도 많다』고 평하는 사람이 많았다.
김부장은 얘기를 끝내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미국정부 초청으로 다음달에 미국에 가는데 도중에 일본에도 들를 예정입니다. 귀정부 지도자들에게 다시 한번 한일회담의 조속한 타결을 위한 결단을 촉구할 작정이오. 여러분께서도 귀국하면 여러모로 도와주십시오.』
김부장의 이런 제의에 대해 일본측을 대표해「우에무라」(직촌)단장이 말을 꺼냈다.
『박정희최고회의의장을 비롯한 한국정부 수뇌의 경제건설 의지와 이를 위해 바치고 있는 열성에 우리들은·큰 감명을 받았읍니다. 5차5개년 계획과 관련한 차관 공여등 대한 경제협력은 우리로서도 해볼만한 일이라고 느끼고 있는 만큼 돌아가면 내각에 대해 적극적으로 얘기하리다.』
당시 국내 상당은 윤보선대통령이 혁명정부의 「정정법」제정에 반발 이미 6개월전에 하야하고 박의장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겸하고있었다.
군사정부는 63년의 민정이양에앞서 한일회담의 결판을 내려고 작심하고 있었지만 앞서 얘기처럼 청구권 규모에서 브레이크가 걸려 주춤거리고 있었다.
이런 고빗길에서 미국은 거중조정을 시도하고 나섰다. 때마침 뉴욕의 유엔총회에서 서로 만난「러스크」미국무장관과「오오히라」일본외상은 한국문제에 관해 상호의견을 교환했고 우리측도 김부장이「러스크」국무장관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해 3각조정용 모색하게 됐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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