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 금융당국이 '을' 금융회사의 권리장전 만드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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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이‘금융회사 임직원 권리장전’제정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당국이 검사권과 제재권을 남용해 이들의 권익을 침해하는 걸 방지하자는 차원에서다. 제재대상도 개인보다는 기관에 촛점을 두겠다는 계획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22일 2차 금융개혁회의를 통해 ‘검사ㆍ제재 프로세스 혁신 방안’을 확정했다. 핵심은 금감원의 검사ㆍ제재권 오남용 방지다. 이를 위해 금융사 임직원 ‘권익보호기준(Bill of Rights)’을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임직원들이 의견에 반하는 진술을 하도록 강요받지 않을 권리, 강압적인 검사를 받지 않을 권리, 검사ㆍ제재 결과에 불복할 수 있는 권리 등이 명시된다.

제재심의위원회에서도 금융사 임직원들에게 금감원 검사 담당과 동등한 수준의 발언기회를 줘 ‘방어권’을 보장해주기로 했다. 금융당국의 검사는 건전성 검사와 준법성 검사로 나눠 진행한다. 금융회사의 리스크 관리와 경영실태를 평가하는 건전성 검사는 컨설팅 방식으로 진행하고 개인 제재도 하지 않기로 했다.

문제가 생겼을 때 금융사 직원으로부터 확인서와 문답서를 받는 절차를 없애고 검사반장 명의의 검사의견서를 주기로 했다. 준법성 검사에서도 내규 위반 등은 금융당국이 직접 제재하지 않고 금융회사에 되도록 자율권을 주기로 했다. 제재는 개인보다는 기관에, 신분제재보다는 금전제재 중심으로 운영하기로 하고 세부방안을 상반기내 마련키로 했다.

‘질질 끄는 검사’도 지양하기로 했다. 건전성 검사는 검사종료 후 60일 이내에, 준법성 검사는 제재심의 예정 사실을 포함해 90일 이내에 실질적인 통보 절차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150일 안팎 걸린 기간을 단축하기로 한 것이다.

검사ㆍ제재 관행 변화 시도는 지난해 이후 금융당국이 금융 개혁과 규제완화 차원에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갑’인 당국의 이런 자제선언에 ‘을’인 금융회사들은 여전히 반신반의하고 있다. 선언 차원의 개혁은 금융당국의 수장들이 바뀔 때마다 수차례 반복됐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별 변화가 없었던 경우가 잦았던 탓이다.

한 금융회사 관계자는“검사방식 선진화나 고압적인 검사과정을‘컨설팅형’으로 바꾸겠다는 방침은 예전에도 나왔던 ‘단골메뉴’지만 곧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곤 했다”면서 “수뇌부들의 선언을 넘어 현장 인력부터 인식변화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민근 기자 jm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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