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림의 '굿모닝 레터'] 추억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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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두 눈 가득 푸른 하늘이 스며들고, 상큼한 바람이 몸에 둘둘 말려옵니다. 모내기가 한창인 내 고향-. 딸을 자전거에 태우고 기찻길 옆 저수지 길을 달렸어요. 하얀 왜가리들이 논마다 먹이를 잡아먹네요.

마침 초등학교 총동창 운동회가 열리니 빨리 오라는 친구의 전화가 왔습니다. 낯가림이 있는 편이라 망설이다 참석했어요. 가까이 가니 마치 꿈 속에 있던 사람들이 얼굴에 주름을 늘리고 몸의 부피를 늘려 앉았더라구요. 학년마다 3반까지만 있어 옛 모습 모두 기억났지요.

한 친구가 "쟤는 억수로 짓궂지 않았니?" "쟤는 옛날 코 많이 흘렸잖아"라고 하더군요. 멀끔하니 입은 친구 얼굴에 어릴 때의 콧물을 붙여 상상하며 웃기도 하고, 도토리를 줍듯 추억을 가슴에 담았어요. 어릴 적 나를 고향 땅에 캥거루처럼 풀어놓았습니다.

오랜만에 만났어도 낯설지 않은 이가 초등학교 동창이더군요. 학교 주변에 늘어선 자가용들… 그 옛날 구경조차 못한 진풍경이죠. 거짓말같이 시간은 흘렀으나 잊고 싶지 않네요. 추억이 인생을 만들어가는 거라 생각하니 오늘도 재밌고 매력있는 것을 보고 싶어 저수지 물가를 돌고 돌았습니다.

신현림 <시인.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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