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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정운찬 이어 또 … 대선주자급 충청 총리 잔혹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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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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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충청 출신 국무총리는 모두 5명(서리 제외)이다. 최초의 충청 총리는 박정희 정부 시절 김종필(충남 부여) 총리다. 이후 충청 출신 총리의 명맥이 한동안 끊겼다가 현행 헌법이 제정된 1987년 이후 다섯 번 등장했다. 노태우 정부의 이현재(충남 홍성), 김대중 정부의 김종필, 노무현 정부의 이해찬(충남 청양), 이명박 정부의 정운찬(충남 공주), 그리고 박근혜 정부의 이완구(충남 청양) 총리다. 김영삼 정부의 이회창 총리는 고향이 황해도 서흥이지만, 부친과 선대의 고향인 본적지가 충남 예산이라 충청 총리로 보기도 한다. 그를 포함하면 충청 총리는 6명이다.

 한국외국어대 이정희(정치학과) 교수는 “민주화 시대 이후 정권마다 꼬박꼬박 충청 출신 총리가 한 명씩 배출됐다는 것은 충청이 지역구도가 강한 한국 정치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 왔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공교롭게 노무현 정부 이후 등장한 충청 출신 총리들은 시련을 겪었다. 한때 ‘충청 대망론’을 불러일으키다 각종 사건·현안에 휘말려 낙마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이해찬 총리는 ‘책임총리’에 가장 근접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총리실 공무원 출신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은 『최고의 총리, 최악의 총리』란 저서에서 “역대 총리 중 그나마 이회창·이해찬 총리가 제 몫을 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당시 노 대통령은 이 총리에게 내치(內治)의 상당 부분을 위임했다. 자신은 매주 열리는 국무회의에 한 달에 한 번만 참석하고 나머지를 이 총리가 챙기도록 했다.

 실제로 그는 국정에 많은 역할을 했다. 국내 영화인들이 결사반대하던 ‘스크린쿼터(국산 영화 의무상영제) 축소’ 같은 난제를 이 총리가 조율해 풀어내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진도를 뽑기도 했다. 헌법에 보장된 ‘국무위원 제청권’을 실제로 행사한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자연 여당인 열린우리당에선 차기 대선주자 중 한 명으로 ‘이해찬’을 꼽는 이들이 늘어나는 추세였다. 하지만 예기치 못했던 사건으로 총리직을 중도 하차했다. 2006년 3·1절 기념식에 불참하고 부산 지역 경제인들과 골프를 친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여론의 비판을 받은 결과이기도 했지만 그의 낙마엔 한나라당의 집중 견제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이명박(MB) 정부 시절 정운찬 총리도 비슷한 코스를 밟았다. 정 총리는 ‘세종시 총리’로 불렸다. 당시 한나라당 친이계 내부에선 정운찬 총리를 대선후보군으로 보는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야당은 물론 여당 내 친박근혜계의 강력한 반발을 샀다. 결국 2010년 7월 이명박 대통령이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던 세종시 수정안이 친박계의 반대로 국회에서 부결되면서 정 총리는 세종시 수정안 부결의 책임을 지고 총리직에서 사퇴해야 했다.

MB는 자서전 『대통령의 시간』에서 “세종시 수정안을 고리로 정운찬 총리를 여당의 대선후보로 내세우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의심을 사게 됐다. 박근혜 전 대표가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한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정부의 이완구 총리 역시 임명과 동시에 ‘충청대망론’의 중심에 섰으나 ‘성완종 리스트’ 파문을 견뎌내지 못했다.

 충청 출신 가운데 김종필 전 총리는 순조로웠다. 다른 총리와는 ‘체급’이 달랐기 때문이다. 특히 김대중 정부 시절엔 DJP 연합을 통한 공동 정권의 주주로서 총리를 맡았다. 사실상 대통령이 임면권을 행사할 수 없는 총리였다.

 단국대 가상준(정치학) 교수는 “이 총리의 경우처럼 특별한 사건에 연루된 경우도 있지만 ‘충청대망론’에 대한 집중 견제를 받은 측면도 간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새정치연합 노영민(청주흥덕을) 의원은 “충청은 정치에서 소외돼 왔다는 실망감으로 인해 ‘대망론’에 대한 기대가 크지만 결과적으로 자존심에 상처만 입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강태화·위문희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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