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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호의 시시각각

갤럭시 대박? … 외길 승부만 남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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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이철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논설실장

자동차 명가(名家)들이 시속 100㎞까지 도달 시간(제로백)을 0.1초 줄이고, 최고 속도를 1㎞ 더 끌어올리는 데 목을 매는 건 부질없어 보인다. 하지만 수퍼카의 세계는 이미지 싸움이다. 0.1초 차이가 운명을 가른다. 자동차업체의 가치는 가장 많이 팔리는 모델이 아니라 최고 성능의 모델에서 결판난다. 그렇다고 수퍼카가 균형과 비율까지 희생할 수 없다. 이런 복잡한 함수를 풀어야 자동차 명가로 군림한다.

 스마트폰도 마찬가지다. 중저가 폰은 시장 비중이 크지만 수익성은 낮다. 중국 업체까지 가세해 스펙은 올라가고 가격은 내려가는 레드오션이다. 프리미엄 스마트폰의 애플·삼성전자를 제외하곤 거의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지난해 3분기 삼성과 애플은 세계 스마트폰 영업이익을 절반씩 나눠 가졌다. 그러나 4분기부터 연이어 애플이 93%를 독식했다. 삼성의 갤럭시S5가 죽을 쒔기 때문이다.

 다행히 삼성의 갤럭시S6는 초반 돌풍이 심상찮다. 유튜브엔 아이폰과 비교실험 동영상이 넘쳐난다.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고, 망치로 때리고, 칼로 LCD를 긁고, 끓는 물에 넣는 영상이 네티즌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정도면 대단한 관심이다. 실제 갤럭시S6는 핵심 시장인 미국과 중국에서 완판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흐름이라면 갤럭시S4의 7000만 대 판매 신화도 충분히 넘볼 수준이다.

 삼성은 S6에 모든 자원을 퍼부었다. 부품을 분해해 본 시장조사 업체 IHS에 따르면 갤럭시S6엣지의 생산원가는 290달러로 아이폰(263달러)보다 높았다. 삼성이 엣지 화면과 두뇌인 엑시노스7칩 등에 최고 사양을 아낌없이 투입했기 때문이다. 2% 허전했던 디자인도 몰라보게 깔끔해졌고, 결제기능과 카메라까지 전혀 손색이 없다. 외신들이 “현재까지 나온 제품 가운데 최고”라 치켜세우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삼성 역시 계급장 떼고 애플과 맞짱 뜰 분위기다. 중국에서는 ‘가이러스(蓋樂世)’란 새 이름을 달았고, 일본에선 ‘삼성’ 브랜드마저 지웠다.

 필자는 지난해 11월 3일 ‘삼성이 애플을 못 이기는 까닭은’이란 글을 썼다. 갤럭시에 방수나 바이오 기능을 입히기보다 판을 뒤흔드는 게임 체인저가 절실하다고 주문했다. 고만고만한 기능보다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S6의 대박 예감이 더욱 반가운지 모른다. 하지만 S6가 게임 체인저 반열까지 오를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듯 싶다. 한동안 세계 시장을 휩쓸고, 10월께 나올 아이폰7과 대등하게 맞서야 가능한 일이다.

 삼성은 갤럭시S6로 두 가지 점이 분명해졌다. 그 하나가 중저가폰보다 여전히 프리미엄폰이 승부처라는 사실이다. 중국 업체 견제나 웨어러블 기기는 아직 맛보기 수준이다. 삼성은 지난 6개월간 아이폰에 뒤지면서 어떤 흑(黑)역사를 겪었는지 기억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 하드웨어 스펙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시들해지는 흐름이다. 물론 스마트폰 부품의 질은 중요하다. 하지만 아이폰6가 왜 1억3000만 대 이상 팔렸는지, 소비자들이 왜 갤럭시S6보다 비싼 S6엣지에 더 열광하는지 눈여겨봐야 한다. 스펙보다 더 소중한 게 가치다. 마음을 흔드는 명작(名作)이라면 소비자들은 망설임 없이 지갑을 연다.

 돌아보면 갤럭시는 2012년의 S3가 게임 체인저였다. S4는 그 후광효과를 제대로 누렸고, S5는 시장지배력만 믿다가 무너졌다. 갤럭시S6와 아이폰6도 냉정하게 따져보면 상대방의 장점을 주저 없이 베낀 대목이 적지 않다. 아이폰은 화면을 키웠고, 갤럭시는 내장 배터리로 세련된 디자인을 얻었다. 하지만 이런 베끼기와 기존의 성공 방정식으론 더 이상 소비자의 마음을 흔들기는 어려울 듯싶다.

 삼성은 아이폰을 누르면 사상 최고, 아이폰에 밀리면 실적이 반 토막 나는 불편한 현실이다. 삼성은 S6를 ‘프로젝트 제로’에서 시작했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이 개발 코드명은 앞으로도 죽 이어져야 하지 않을까? 아이폰을 누르거나 양강 구도로 버티는 것 외에는 앞날이 안 보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명가처럼 삼성 앞에도 외길 승부만 남아 있다.

이철호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