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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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봄꽃은 역시 진달래다. 누가 보든 말든 깊은 산중 바위틈에서도 진달래는 봄빛을 자랑하고 있다.
우리 작가 심훈은 그의 소실 『영원의 미소』에서 『산기슭에 조그만 계집애들이 분홍치마를 입고 쪼그리고 앉은 것 같다』고 묘사했었다. 아직 파릇한 기도 없는, 죽은 듯한 산에 분홍빛 진달래가 무더기 무더기로 피어 있는 광경은 그럼직도하다.
진달래를 중국 고전에선 두견화(두견화)라고 했다. 설명이 걸작이다. 소쩍새(두견이)가 울 무렵에 피는 꽃이라고 그런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우거진 진달래 와직지 우는 이 삼경의 네 울음』하고 두견이를 읊은 김영낭의 노래도 그 얘기다.
진달래의 종류는 알려진 것만 해도 5백 종을 넘는다. 세계의 식물학자들은 해마다 신품종을 발표할 정도다. 문일평이 『화하만필』속에서 진달래의 종류를 『통틀어 37종』운운한 것은 벌써 반세기도 넘은 옛날옛날 얘기다.
영어로는 진달래를 「어제일리어」(azalea)라고 한다. 그리스어「azaleos」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메마르다, 건조하다는 뜻.
바로 진달래는 메마른 땅에서도 잘 자란다. 심한 봄 가뭄, 산비탈에서도 이른봄이면 잊지 않고 꽃을 피운다.
원종은 중국산. 일설에는 강원도 해변에 자생하는 진달래를 러시아의 해군 「슐리펜바하」라는 사람이 채취, 유럽에 옮겨 심었다고 한다. 실제로 『세계 식물도감』을 보면 진달래의 학명 가운데 그의 이름을 붙인 슐리펜바히(Schlippenbachii)종이 있다.
옛 시 한 수가 없을 수 없다.
-창 밖에서 우는 새야/어느 산에서 자고 왔는가/산중의 일 알고도 남을 테니/진달래가 피었더냐, 말았더냐.
죽서박씨라는 여류가 10살 때 지은 노래라고 한다.
요즘은「두견 개미개」를 물을 필요도 없다. 진달래는 도회지 한구석의 작은 마당에서도 사양 않고 봄날을 반겨 맞는다. 분홍빛의 아름답기도 산중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옛 우리조상들은 삼춘 행락 중엔 진달래꽃전(화전)을 잊지 않았다. 진달래 꽃잎에 찹쌀가루를 묻혀 참기름에 띄워 지진 것이다.
지금은 그 맛을 짐작도 하는 사람이 드물지만, 진달래 특유의 촉촉한 향기는 상상할 수 있다.
꽃은 예나 다름 없어도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멋과 운치는 예와 다른 것이 오늘의 시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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