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 일기' 펴낸 재가불자 김홍근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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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체로금풍(體露金風)의 시절이다. 잎새를 모두 벗은 나무에 비로소 맑디맑은 바람이 부는 법. 화두 하나 들고 공부하기에 딱 좋은 요즘이다. 때마침 불교 조계종단은 재가자를 위한 간화선(看話禪)수행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산중에 갇힌 참선을 시중에 풀어놓은 것이다.

그러나 공부엔 바른 길이 있는 법. 더우기 마음공부는 미로에서 탈출구 찾기다. 수천갈래 어지러운 마음 길 중 제 길을 못찾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잘못 된 길 위에선 제아무리 용맹정진한들 물 속의 달을 건지려는 원숭이 꼴일 터이고 모래를 찌니 밥이 될 리가 없다.

재가자들의 화두 참구법에 작은 나침반이 돼 볼까 나선 이가 김홍근(48.성천문화재단 연구실장)씨다. 성천은 무궁화 박사로 유명한 고 유달영 박사의 호다. 김씨는 참선에 2004년 가을 입문, 지금은 깨달음의 전단계쯤 되는 의심의 구름에 싸여 있다고 한다. 물론 직장 생활을 하면서다. 그는 올해 100일에 걸친, 식사는 이렇게 했다는 등의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넣은 '참선일기'를 펴냈다. 도대체 화두란 어떻게 드는가.

김씨는 이 공부가 알고보면 매우 재미있고 결코 어렵지 않다고 했다. 공부의 단계를 따라 올라가면서 내면의 변화가 기분 좋게 느껴지니 재미있고 주인공이 죽지 않는 게임이니 할 만하다는 것이다. 이기면 주인공을 만나 대오(大悟)하고 지더라도 미혹에서 헤매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이란 누구에게나 내면에 들어 있는 자성,불성,부처 혹은 본래 면목을 말한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는 몇개의 문이 있다. 마음을 일으킨(發心) 뒤 들어가는 첫 문이 신심문(信心門)이다.

- 순간순간 일어나는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나. 도대체 마음이 뭔가.

"'이미 내가 부처'라는 걸 무조건 믿는 마음이 공부의 시작이다. 그래야 문제를 푸는 열쇠가 밖에 있지 않고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마음이 쉬면 비로소 부처 마음과 중생 마음이 가려 보이게 된다. 중생 마음은 왔다가 꺼지는 것, 부처 마음은 항상 여일하게 샘솟는다. 부처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평상심이 곧 도라는 뜻이다."

공부의 두번째 문은 분심문(忿心門)이다. 중생마음에 휘둘려 속아 산 세월을 분해하는 단계다.

"공부해야겠다는 자각이 솟구치게된다. 공부가 전투처럼 느껴진다. 간화선은 이 때 적의 졸병들은 무시하고 적장의 목을 바로 노린다. 적장이 누구냐. 바로 지식이나 번뇌라는 졸병들에 둘러싸인 가짜 자아다. 이 가짜를 죽여야 참 나를 볼 수있는 것이다."

참 나를 보기 위한 끝없는 질문의 단계가 의심문이다. 이때 무엇을 의심해야 할지 바로 아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드는 것이 화두요 그 대표적인 게 '이 뭣고'(What is this?). 이 '이'(this)가 참 나다!

-'이 뭣고'단계에서 대부분 나가떨어지는데 왜 그런가.

"'이 뭣고'를 참구하기 전에 참 나인'이'를 먼저 감지해야 한다. 확실한 '이'를 앞에 두고 '뭣고'하고 물어야 결판이 날 게 아닌가. 참 나를 감지하려면 종교체험이 필요한데 이게 산중보다 일상생활에서 더 유리하다. 세속의 가치의 무상함을 사무치게 느끼고 그 무언가를 염원하는 마음 그것이 종교체험이다. 절실한 체험을 하면 자기 안에서 자기도 모르는 어떤 힘을 만난다. 바로 참 나다. 그런데 그것은 모양이나 이름이 없기 때문에 머리로는 포착할 수가 없다. 있긴 있는데 잡을 수는 없으니, 이게 뭔가 하고 저절로 의심이 나는 것이다. 그게 '이 뭣고'다. 한번 의심이 나면 갈수록 뭉처져서 수행자를 도망갈 틈이 없는 공부의 공간으로 몰아넣게 된다. 참 나에 대한 절실한 종교체험이 없는 사람은 '이'가 뭔지도 모르고 '뭣고'하고 물으니 될 리가 없다. "

의심문을 나서면 험준한 조사관(祖師關)이 길을 가로 막는다. 이 문을 넘으면 드디어 확철대오, 아무 것도 거칠게 없는 자재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리고 득도한 이는 자기가 인연을 맺고 있는 원래의 일상생활로 회향해 중생을 제도한다.

- 조사관은 어떻게 넘을 것인가

"나도 아직은 모른다. 공부할 뿐이다."

글=이헌익 문화담당기자 <leehi@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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