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절망에서 성공을 끌어낸 그들 … 비관해야 생존한다는 역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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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비관의 힘
정선구 지음, 책밭
308쪽, 1만6000원

영화 ‘시네마 천국’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키스신 모음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다. 중년이 된 토토는 어린 시절 볼 수 없었던 사랑의 정수가 담긴 스크린을 보며 인생을 생각한다.

 알프레도가 영사 기사가 아닌 경제부 기자로 젊은 날을 보냈다면 내놓았을 만한 책이다. 저자가 정치·경제 현장에서 20년 이상 취재한 국내외 최고경영자(CEO)와 파워 엘리트의 삶 중 슬픔과 절망, 역경의 순간들을 따로 모았다. 미끈하게 다듬어진 성공 스토리 편집본에서는 볼 수 없던 ‘컷’들은 이랬다.

 “이대로라면 두산은 6개월 내에 망합니다.” 두산그룹 박용만 사장이 컨설팅 업체 파트너에게 면전에서 들은 말이다.

 “제발 저를 ‘딴따라’라고 부르지 말아주세요. 그저 열심히 살아가는 ‘연예인’이라고 불러주시면 안 될까요?” 대한민국 최고의 코미디언 고(故) 이주일이 사석에서 드러낸 고뇌다.

 “하루 종일 책을 읽어도 저녁이 되면 공부한 양이 얼마 되지 않음에 절망하곤 합니다.” 10년 전 성공한 벤처회사를 놓고 미국 유학을 떠난 창업가 안철수는 e메일에 절망과 초조함을 털어놓는다.

 책은 이러한 역경과 좌절의 순간들에서 삶의 정수를 발견한다. 그냥 성공의 힘이 1이라면 실패를 겪은 뒤 생기는 힘은 2가 된다는 것이다. 실패 뒤의 성공, 비관 후의 낙관, 부정한 다음에의 긍정의 힘이 배가 되는, 정반합의 이치다. 이는 물론 역경을 우회하지 않고 정면돌파한 이들에게 해당한다.

 그런 면에서 비관은 낙관의 대척점이 아니다. 사랑과 슬픔의 눈으로 중생을 보는 대자대비한 석가모니의 눈이다. 스스로 처한 바닥을 진지하게 직시하고 하늘을 향해 일어서는 솔직한 슬픔의 힘이다.

 책은 삼성·현대차·SK·LG 같은 대기업에서부터 다음카카오·엔씨소프트 등 중견 신흥 기업, 카페베네·천호식품·김가네 같은 식품기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국내 기업 CEO들과 빌 게이츠, 마윈, 마크 베니오프 같은 해외 경영자, 조선과 일본의 근대사 주인공들을 ‘비관의 힘’의 증인으로 제시한다. 80여 명의 국내 주요 기업 창업가와 전문경영인, 전현직 경제 관료들은 실명으로 등장한다. 저자가 이들과 직접 만나 듣고 보았거나 e메일을 주고받은 내용을 담았다는 것이 책의 미덕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을 언급한 부분도 전해들은 이야기가 아닌, 저자가 직접 체험한 일화를 소개했다. 성공한 이들의 사례를 수집해 나름의 이론에 대입하는 경영도서나 자기계발서와 구별되는 지점이다.

심서현 기자 sh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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