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왜 가정을 버리고 부모를 등져야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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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토요일 아침 출근하기 위해 골목길을 나서다가 잠시 발길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수유리에 살면서 단골로 드나드는 목욕탕 주위 5m반경에 플래스틱줄이 둘러쳐져 있고 현장 보호를 위해 경찰관들이 엄한 경비를 하는 가운데 온 동네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엊저녁에 강도가 들어와 주인 아줌마를 살해했데요.』
과일가게 아줌마가 일러주는 말을 듣는 순간 입이 딱 막혔다. 그토록 신문에 하루행사처럼 보도되던 살인강도가 드디어 좀도둑도 잘 들지 않는다는 이곳에도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가슴 철렁한 불안감은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범인은 23세의 앞날이 창창한 청년이란다 주민들에 따르면 범인은 13세의 소년 때 가출하여 이 집에서 10여년 동안 한 식구처럼 일(때밀이)하면서 잔뼈가 굵어졌는데, 지난 연말 새로 생긴 인근 목욕탕으로 일자리를 옮겨버렸단다 그리고 범죄동기가 단지 「애인과 동거할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우발적으로 저지른 사건」으로만 보도되었다.
그러나 내 의문은 좀체 풀리지 않았다. 범죄동기가 꼭 돈이었다면 왜 피살자 손가락에 끼어 있던 다이어반지며 돈자루에는 손도 대지 않았을까, 왜 50대여인의 시체는 유독 하복부에 끔찍한 난도질을 당해야 했을까 등등의 심층적인 상상이 잇달았기 때문이다. 며칠동안은 동네는 이화제로 시끌벅적했다.
그러나 그 많은 말 중에서 은연중 한가지로 요약되는 말은 범죄동기가 상처와 한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보호받아야할 어린 시절에 가출해서 목욕탕 때밀이로 전전하는 동안 유별난 주인이라도 만나게 된다면 남은건 상처 외에 별수가 있겠느냐는 얘기다.
문득 2주일 전엔가 보았던『추적 60분』의 청소년 가출 진상과 청소년 범죄 동기가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오는 한편, 나는 가정의 평화가 어디로부터 오는가를 우리 모두에게 다시 질문하고 싶어졌다. 또 그 『추적 60분』에서 파헤쳐진 시한폭탄 같은 청소년 범죄 현장은 지금 어떻게 처리되어 가고 있을까도 궁금해졌다.
그날 보도에 따르면 사소한 가정불화나 불안한 환경으로 인하여 청소년들이 무작정 집을뛰쳐 나오면 버젓한 기성인들의 검은 손에 의하여 그들은 범죄의 소굴, 혹은 착취의 소굴로 강제 인도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검은 손들의 변명도 가관이었다. 뉘우침은커녕 오히려 선도라는 것이었다.
1주일전엔 또 어떤 종교의 마술에 걸려 가정과 아이들을 내팽개치고 가출한 여러 가정주부들의 보도를 시청했다. 그들 모두가 한결같이 근근이 살아가는 서민층 가정이었다.
생명의 계절, 약동의 계절이라는 이4월에 그들은 왜 가정을 버리고, 부모를 등지고 뛰쳐나와야만 했을까? 왜 20대의 청년들이 살인강도질을 풀베듯 저지르고 쇠고랑을 차는 것일까? 이는 결코 한가정의 불행에만 국한된 국부적 원인으로 돌릴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위기신호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네 가정의 평화가 내 가정의 평화로 연결된다는 공동체적 의식의 가치관이 문화 전반에서 뿌리를 내리는 일에 우리는 얼마나 기여하고 있나를 곰곰 따져야할 시기에 와 있는 것 같다.
지금도 낮 열두시만 되면 가던 길을 멈추고 성벽에 기대어 단 세마디 기도속에 『나와 나라와 온 인류의 평화』를 기원한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활교육이 우리 것으로 만들어질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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