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정원제의 시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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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4년동안 숱한 물의를 빚었던 졸업정원제가 사실상 폐지되었다. 문교부는 지난5일 85학년도부터 대학의 초과모집 정원을 졸업정원의 1백30% 범위에서 자율적으로 책정할 수 있도록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 제도가 처음부터 말썽이 된 것은 대학에 따라 학생들의 수준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강제탈락율을 일율적으로 적용한데서 비롯되었다. 졸업정원의 30%를 반드시 초과 모집하고 상대평가에 의해 탈락시켜야 하는 경직된 운용으로 성적이 우수한 학생조차 탈락의 고배를 들고 마침내 인생의 낙오자가 되는 모순을 자아냈다.
제도의 불합리성을 인정한 당국의 결단은 평가되어 마땅하지만 이제부터의 문제 역시 만만치 않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대학의 자율성 제고는 학문연구의 자유와 함께 꼭 실현되어야할 과제의 하나다. 대학 자율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은 다른 말로하면 대학의 질을 높이는 부담이 대학당국에 더 많이 돌아 갔음을 뜻한다.
대학의 질을 향상시키려면 무엇보다 마음껏 연구하고 가르치며 배우는 곳으로서의 여건부터 개선해 나가야 한다. 시설이나 교수요원의 충실화는 제쳐두고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들의 탈락부터 시키는 것은 본말의 전도일 뿐 더러 그 자체가 비교육적이란 비판을 면키 어렵다.
우리는 지금 선진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교육개혁 논의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남의 문제가 아니다. 당장 우리가 당면한 우리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다.
개혁논의 방향은, 교육은 되도록 공적기관의 지도나 규제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하루가 다른 과학기술의 발전속도에 비추어 학교교육은 한계에 왔다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획일적인 교재에, 획일적인 학교제도를 갖고 어떻게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갈 인재를 양성하겠느냐는 것이다.
대학의 자율성을 높이는 일련의 조치는 크게 보면 교육의 다양화, 개성화를 지향해야 한다는 이러한 추세와 그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대학교육에서 불거진 많은 문제점들이 획일적이며 경직성을 띤 당국의 간섭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이 기회에 깊이 성찰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순수민간기구인 「대학평가위」에서 대학의 질문제를 자율적으로 지도 감독해오고 있다. 무자격 교수를 채용하거나 시설이 미비하다든지 학위를 남발하는 따위 비권위적인 대학에 대해서는 학위를 인정치 않는 방법등으로 자체적인 규제를 하고 있다.
대학운영에 당국이 개입하는 일은 시대의 진운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런 뜻에서 입시에서부터 졸업에 이르기까지 대학의 학사운영에 대한 관주도는 서둘러 탈피해야 한다.
현재 문교부가 하고 있는 「행정지도」기능을 대학교육협의회에 맡겨 대학의 자율성을 높여주는 방안도 이 기회에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졸업정원제의 사실상 폐지가 단순히 시행과정에서 생긴 부작용의 제거라는 점에서가 아니라 대학교육을 발전시키는 하나의 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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