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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은 엽색에 바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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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그는 누구인가>
소련에서 김일성과 죽은 본처 김정숙사이에서 출생. 금년 42세. 64년 김일성대학 정치경제학과를 나왔다.
60년3월 동독항공군관학교에 유학했으나 기초실력부족과 방탕기질로 1개월만에 자진퇴교.
60년4월 어쩔 수 없이 김일성대학 정치경제학과에 입학, 64년8월 졸업했다.

<여성편력>
중학교시절부터 주위의 여학생중 마음에 드는 여자는 경호원을 시켜 닥치는 대로 납치, 농락하였고 김일성대학 때는 미모의 여학생 수명을 농락, 임신시키는등 호색방탕한 문제아였다.
김정일은 본처 (영숙, 성·나이 미상)외에 첩2명과 생활하면서도 주변의 근무여성을 특별양성하여 성적유희로 농락하고 있다.
김은 77년부터 매년 시·도예술전문학교 졸업반 여학생 가운데 미모의 30여명을 선발, 평양적십자병원의대에 l년과정의 특설반에서 기본간호교육을 시킨 뒤 홍콩·마카오등지에 파견하여 안마술등 단기간의 연수를 시켜 자신이 최종심사한 여자를 집무실·공관·별장등에 배치하여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영화배우 유진희 (『당의 참된 딸』 주인공)·홍영희 (『꽃파는 처녀』의 주인공)·최삼숙·이정순·채수련·오화자·고지미등 10여명과「만수대예술단」무용수 10여명·전용타자수·담당간호원등 숱한 여자들과 성적유희를 자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변태음란자>
김정일은 주말마다 각종연회를 열고 무용수들에게는 전나체로 춤을 추게하며 참석자 (중앙당 부부장급이상)로 하여금 이들을 애무토록 한 뒤 즐기는 등 변태적 음란기질자임을 보여 주고 있다.
김은 트럼프·화투등 오락에서 지는 사람은 머리를 삭발하거나 옷벗은 채로 귀가토록 벌칙을 만들었으며 전외교부장 허담, 문화예술부장 이창선은 이 벌칙으로 머리반쪽을 삭발당한 후 모자를 쓰고 다녀야 했다.

<잔인·호전성>
77년 첩관계등 사생활을 누설했던 공관관리책임자 이수현(39)이 총살형을 당했고, 같은 해 자신의 난잡한 여자관계를 주위에 발설했던 연락군관 추태식(52·대좌)을 처형했다.
78년에는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 박성수(52)가 『여자관계를 정리하라』고 충고 했다가 역시 처형되었으며, 80년 김일성에게 김정일의 사생활이 너무 방탕하고 퇴폐적이라고 진정하는 익명의 투서사건이 발생하자 김정일은 2개월의 수사끝에 선전선동부 부부장 이명재(55)의 처를 범인으로 색출, 남편 이가 직접 총살토록 명령했다.
81년 김은 자기와 정을 통한 간호원 이영미(27)가 부모에게 『나는 김정일을 모시고 있다』는 편지를 보낸 사실을 알아내자 임신중인 이를 처형했으며, 같은 해 자신의 허가 없이 첩에게 모스크바행 비행기표를 구입해준 공관관리과장 노종일(55)을 첩 면전에서 구타, 실신시켰다.
또 김정일이 81년 여동생 김경희(36)와 같이 지방 여행 때 동행한 예술단원 한명이 술에 취해 추태를 부리자 김은 권통을 꺼내 그 자리에서 총살하려는 것을 김경희가 말려 중지한일이 있으며, 김의 차가 달릴 때는 마주치는 차량은 사전정지를 의무화하고 이를 위반, 머뭇거리거나 늦게 정지하는 차량은 동승비서로 하여금 반드시 색출, 처벌토록 하고 있다.

<암살대>
김정일은 75년 대남공작부서를 직접관장하는등 정치일선에 등장하면서 김일성부자세습체제를 반대하는 인사들을 극비리에 숙청하기 위해 국가정치보위부안에 비밀단체인「암살대」 를 조직, 직접 지휘하고 있다.
76년3월 교통사고로 발표한 당시 정무원 부총리 남일(당시6l세)의 사망도 실은 「암살대」에 의한 처단. 「암살대」는 평양∼남포간 고속도로에 대형화물트럭을 세워 놓았다가 달려오는 남일의 승용차로 돌진, 정면충돌케 하여 죽인뒤 교통사고 사망으로 발표했던 것이다.

<해외납치전담반>
김정일은 75년 작전부에 해외 납치공작 전담과를 설치했다.
이곳에서는 매년 고등학교졸업반 학생중에서 성분·미모·적성 및 신체조건등이 양호한 20여명을 엄선, 3년간 납치전문교육·어학교육·해외연수등을 실시하여 김의 최종심사를 거쳐 10여명을 선발, 각국에 배치한다.

<8백억원의 공관>
김정일의 생활은 호화의 극을 달하고 있다.
80년 공관확장보수 때는 서독기술자를 초빙, 최고급 외제장식품으로 치장하는등 영국화 2백만파운드(당시 시세로 30억원)를 들였다.
평양에는 미화 1억달러 상당의 공관4개소, 각 지방에 초화별장 9개소, 최신형 고급외제승용차 30대를 소유.
김은 또 전시에 대비, 개인명의로 금괴 7t과 거액의 외화를 서방 은행에 예치해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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