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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재건축 들썩이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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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정부가 내놓은 '8.31 부동산대책'을 새삼스럽게 왜 나열하느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7월 20일 한나라당이 당론으로 확정해 발표한 5대 분야 15개 부동산대책의 골자다.

종부세를 가구별로 합산 과세하자는 안은 당시 정부조차 위헌 가능성 때문에 주저했던 조치였다. 양도세 중과세 대상을 1가구 3주택 이상에서 2주택 이상으로 확대하자는 안도 한나라당이 앞장서서 주장했다.

그러나 정기국회 폐회를 사흘 앞둔 지금 한나라당의 태도는 180도 바뀌었다. 한나라당의 '특허'인 종부세 가구별 합산 과세마저 의원마다 말이 엇갈리고 있다. 오죽하면 박근혜 대표가 "당론과 다른 얘기는 곤란하다"며 집안 단속에 나섰을까.

한나라당의 반대로 국회에서 8.31 대책의 입법이 지연되자 강남 재건축 단지에선 집값이 들먹이고 있다. 일각에선 "국회에서 8.31 대책이 완화되면 내년부터, 원안대로 통과되더라도 현 정권 임기가 끝나는 2년 뒤면 집값은 다시 뛴다"는 말까지 공공연히 나돈다. 뚝 끊겼던 부동산 거래가 다시 살아나는 걸 보면 부동산값이 떨어지지 않으리라고 점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말이 터무니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다른 정책도 마찬가지겠지만 부동산 정책은 '기(氣) 싸움'의 성격이 강하다. 종부세 대상자를 9억원 이상으로 하느냐, 6억원 이상으로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이번에도 2004년 10.29 부동산대책처럼 국회 입법 과정에서 대책이 완화되지 않았느냐'는 시장의 불신을 사는 게 훨씬 심각하다. 정책에 대한 믿음에 한번 금이 가면 '댐'이 무너지는 건 시간 문제다. 더욱이 아직도 시중에는 400조원에 이르는 부동자금이 떠돌고 있다.

한나라당은 내심 서민을 위한 감세안과 부동산 입법을 서로 맞바꿔 서민의 환심을 사자는 계산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민에겐 세금 몇 푼 깎아주는 것보다 집값을 안정시켜 주는 게 훨씬 절박하다.

한나라당이 책임 있는 야당의 모습을 보여 주려 했다면 정부.여당이 8.31 대책을 만들 때 여당의 요청을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참여했어야 했다. 한나라당 스스로 당시엔 정부안보다 강한 대책을 내놓지 않았던가. 이제 와서 8.31 대책의 뒷다리를 잡고 감세안과 흥정하려 든다면 한나라당이 원하는 '서민의 환심'을 사기 어렵지 않을까.

정부와 여당도 야당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려 해선 곤란하다. 최근 강남 재건축 단지의 아파트값이 들먹거리는 원인이 모두 '투기'에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수도권에는 1992년 분당 신도시 입주가 시작된 이래 10여 년 동안 강남과 견줄 수 있는 고급 주택 단지의 공급이 이뤄지지 않았다.

국민소득이 높아지니 고급 주택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강남 이외엔 그만한 교통.교육.문화 환경을 갖춘 주택지가 없으니 '강남 불패' 신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따라서 8.31 대책 때 정부가 발표했던 송파 신도시 건설 등 공급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지금 강남에 집을 안 사도 앞으로 그만한 집이 계속 시장에 나올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 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강남 집값 잡기' 대책이 아닐까.

정경민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