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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아오른 日 벤처 업계 - 뭉칫돈 몰리고 대기업도 러브콜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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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토마츠 벤처서포트의 대기업-벤처기업 매칭 이벤트 ‘모닝피치’는 큰 인기에 4월 100회를 맞이한다. 사진:동양경제 제공

그야말로 일본 벤처기업에게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1월 22일 도쿄 시내 한 호텔에서 개최된 제1회 일본 벤처대상 표창식에 참석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유글레나(Euglena)의 이즈모 미츠루 사장에게 내각총리대신상 표창상을 수여했다. 유글레나는 유글레나를 이용한 건강식품과 바이오매스 연료를 개발하는 벤처기업이다. 시상식에서 아베 총리는 “산업 개혁을 담당하는 것은 벤처기업”이라며 창업자들에게 응원의 인사를 건넸다. 이 시상식의 총책임자인 경제산업성 이시이 요시아키 신규사업조정관은 “일본 총리가 직접 벤처경영자에게 표창하는 것은 아마 처음일 것”이라며 “오늘은 기념할 만한 날”이라고 감개무량한 듯 이야기했다.

벤처기업 IPO 올해 100종목 넘을 듯

표창만이 아니다. 최근 일본 정부는 벤처기업 지원에도 적극적이다. 지난해 9월에는 경제산업성 주최로 벤처 창조협의회 설립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이 컨퍼런스는 일본 벤처대상과 마찬가지로 지난해 6월에 각의에서 결정된 ‘일본재흥전략 개정 2014’라는 구조개혁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당일 컨퍼런스와 함께 447개 벤처기업과 대기업 97개사의 매칭 이벤트도 열렸다. 반응이 매우 뜨거웠다고 한다.

벤처 지원 움직임은 민간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9시 신주쿠 서쪽 출구의 고층 빌딩에서 열리는 ‘모닝피치(Morning Pitch)’ 이벤트는 감사법인 토마츠의 자회사인 토마츠 벤처서포트의 주최로 2013년 1월 시작됐다. 이 이벤트의 목적은 벤처 창조협의회 설립 컨퍼런스와 마찬가지로 대기업과 벤처기업 간의 매칭이다. 매회 4~5개 벤처기업이 등장해 자신들의 사업을 소개하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진다. 참가자는 매회 100명 이상에 달하는데 그중 70%가 대기업, 나머지는 벤처캐피털(VC)이나 미디어 등이다. 회를 거듭할수록 반향이 커져, 4월 100회를 맞이한다. 이벤트를 설립한 사이토 유마 사업총괄 본부장은 “모닝피치를 계기로 지금까지 약 100건의 협업이 탄생했다”고 이야기한다. 대기업 쪽 만족도도 높다. 거의 매회 참가하고 있는 덴츠의 한 사원은 “클라이언트인 대기업과의 관계가 기존의 광고에 머물지 않고, 사업 개발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며 “이 자리에서 유망한 벤처기업과 만남으로써 우리(대기업) 쪽 선택지도 늘어났다”고 평가한다.

벤처기업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수치로도 나타나고 있다. 재팬 벤처리서치에 따르면 비상장 벤처기업의 자금 조달액은 지난 2012년 최저(557억엔)로 떨어졌다가 지난해 1154억엔으로 증가해 6년 만에 1000억엔을 돌파했다. 올해 들어서도 그 기세는 사그라지지 않고, 주식시장이 들끓었던 2006년의 1452억엔을 바라보고 있다. 여기서도 ‘정부(官)’의 존재가 눈에 띈다. 관민출자 투자펀드, 산업혁신기구 등이 중심이다. 산업혁신기구는 총액 2조엔으로 격이 다른 운용력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에는 벤처기업에 대한 직접 투자 외에 벤처캐피털에 대한 자금 공급도 하고 있다. ‘마치 일본 내 VC는 산업혁신기구의 산하와 같은 형태를 띄고 있다’는 벤처 관계자의 농담도 들려올 정도다.

자금을 조달 받는 벤처기업 입장에서 보자면 이렇게 좋은 기회가 없다. 실제로 자금 조달을 받는 벤처 수는 늘어나지 않지만, 한 회사당 조달액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 2월 인터넷 인쇄기업인 라쿠스루(Raksul)는 40억엔의 투자를 받았고, 애플리케이션 수익화를 지원하는 메타푸스(metaps)도 같은 달 43억엔을 조달했다. 지금까지의 일본 벤처와 달리 파격적인 수준의 투자 경쟁이 이뤄지고 있다는 의미다. ‘일본에는 약 3만개에 달하는 인쇄회사가 있지만, 비효율적이고 가동시간도 짧다. 여기에 인터넷 기술을 접목해 싸게 인쇄물을 제공한다는 비전에 많은 VC이 공감해줬다’(마츠모토 야스카네 라쿠스루 대표).

벤처 투자가 활기를 띠게 된 배경에는 주가 상승도 있다. 보조를 맞춰 기업공개(IPO) 건수도 회복 기조를 보이며, 라이브도어 쇼크(2006년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시작된 라이브도어 강제수사에 따라 주식시장이 폭락한 사건) 이전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2009년 최저점(19개 종목)을 찍은 뒤 꾸준한 상승세다. 올해도 100개 종목 정도가 IPO에 나설 전망이다. 한때 동날 정도로 얼어붙었던 IPO 건수를 부양시키기 위해, 도쿄증권거래소도 2011년부터 IPO 활성화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심사 과정을 간편하게 바꾼 게 도움이 됐다. 도쿄증권 마더스(1·2부보다 규모가 작은 기업이 상장하는 주식 시장으로 한국의 코넥스와 유사)의 경우 3개월 이상이 필요했던 심사기간을 2개월로 단축시켰다. 상장을 검토하고 있는 기업을 대상으로한 세미나를 실시하는 등 홍보 활동도 늘렸다.

벤처기업에 인재까지 파견하는 대기업들

‘무턱대고 심사기간을 단축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블랙박스처럼 여겨졌던 심사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하야세 코우 상장추진부 어카운트 매니저). 출자자(VC) 입장에서 보자면, 투자 자금회수 수단은 IPO와 매각 두 가지다. 일본은 IPO에 따른 자금 회수가 주류기 때문에, IPO 건수가 증가하면 벤처에 대한 자금 유입도 늘어나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

관민의 협업으로 분위기가 고조되는 벤처 업계지만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것은 벤처만이 아니다. 대기업 측도 벤처와 손을 잡으려고 필사적으로 기회를 모색하는 분위기다. 최근에는 ‘통신이나 부동산, 방송국이나 철도 회사 등이 벤처기업과의 협업에 적극적’(토마츠 벤처서포트의 사이토씨)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한 배경에는 대기업의 ‘잉여자금’와 ‘고착상태’가 있다. 2014년도 상장기업(금융회사를 제외한 3463사)의 현금성 예금은 49조2953억엔으로 엄청난 규모다. 이러한 윤택한 현금을 굴릴 곳을 찾던 대기업이 ‘R&D(연구개발)비 명목’으로 벤처 투자에 자금을 쏟아 붓는 것이다. 이것이 코퍼레이트 벤처캐피털(CVC) 활성화로 나타나고 있다. 벤처 투자 동향을 조사하는 벤처 엔터프라이즈센터의 이치카와 류지 이사장은 “CVC는 아예 연구개발을 목적으로 해 이익을 무시하고 투자하는 케이스가 눈에 띈다”고 분석한다.

간접적인 벤처 출자도 있다. 상징적 존재가 일본 내 독립계 VC로서 최대 운용규모를 자랑하는 ‘윌(WiL)’이다. 이 회사는 소니·닛산자동차 등 10개가 넘는 대기업으로부터 3억6000만 달러를 출자 받고 있다. 산업혁신기구 역시 출자하고 있다. 이사야마 겐 윌 대표는 “우리는 대기업에서는 할 수 없는 기술이나 서비스를 연구하는 벤처에 투자한다”고 설립 목적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 하나인 대기업의 ‘고착상태’란 대기업에서 더 이상 새로운 사업이 나오지 않는 딜레마다. 윌은 출자뿐 아니라 대기업에 벤처 마인드를 이식하려는 노력도 시작했다. 미국 거점에서 대기업의 파견 인재를 받아들여 함께 투자 활동을 하거나 신사업을 찾으려 한다. ‘최종적으로는 이러한 노하우가 대기업에 축적돼 장래에는 윌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사업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을 지향한다’(이사야마 대표).

‘벤처 업계의 별’이라던 게임회사 알고 보니 적자

파나소닉을 퇴직하고 2007년 가전 벤처기업인 세레보(Cerevo)를 설립한 이와사 타쿠마 대표는 “대기업은 조직부터 기본적인 사고방식을 포함해, 무에서 유를 낳는 개발이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한다. 대형 전기 메이커 담당자들이 연일 이와사 대표를 방문하지만 “아직도 그들은 기존 조직, 인원의 연장선에서 승부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돈을 출자하는 것뿐만 아니라) 벤처기업에서 임원을 발탁하는 정도가 아니면 간단히 바뀔 수 없다”고 지적한다. ‘경합이 아니라 벤처기업의 속도감이나 사고방식을 수용해야 한다’(벤처 동향에 정통한 재팬 벤처리서치의 기타무라 아키라 대표)는 목소리에 대기업이 귀를 기울여야 할 시점이란 뜻이다.

일단 라이브도어 쇼크 때와는 상황이 많이 변했다. 대기업의 러브콜이 줄을 이으니 일단 벤처 업계에 숨통이 트인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버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주주 모두에게 폐를 끼친 점에 대해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 3월 10일 투자가 대상 설명회에서 최근 몇 년 간 ‘벤처 업계의 별’이라고 불렸던 스마트폰 게임회사 구미(gumi)의 구니미츠 히로나오 사장이 비통한 표정으로 연설에 임했다. 구미는 2014년에 비상장 벤처기업 중에서도 단연 눈길을 끌 자금 조달에 성공했다. 12월 도쿄증권 1부 상장 때까지 끌어 모은 자금은 128억엔에 달했다. 그만큼 장래가 유망했다. 하지만 구미는 상장 직후인 3월 5일 2015년 4월 기간 당초의 영업흑자 예상(13억엔)을 깨고 적자 4억엔이란 실적을 발표했다. 주식 시장의 실망은 컸다. 주가는 이틀 연속 하한가를 기록하며, 상장 당시 발행 가격인 주당 3300엔을 크게 밑돌았다.

가장 큰 오판은 매출의 80%를 점하는 주력 타이틀 ‘브레이브 프론티어’가 힘을 잃은 데 있다. 하지만 이는 상장 전부터 낌새가 있었다. 월간 이용자수는 지난해 8월을 정점으로 감소 추세를 나타냈고, 대금 수입도 하락했다. 그럼에도 통상 매출 대비 10% 전후로 쓰는 광고선전비를 26%까지 극단적으로 늘렸다.

증권회사에도 책임이 있다. 구미의 주거래 증권사는 약 1년 전 다이와증권에서 노무라증권으로 바뀌었다. 당시 ‘노무라는 시가총액을 좀 늘려야 한다고 구미에게 속삭였다’고 어느 증권사 관계자는 이야기한다. 구미는 상장 1년 전에 3번의 대형 투자를 받았고, 지난해 9월 증자할 때만 해도 주가가 1362엔 정도였다. 그러나 3개월 후 상장 시에는 발행 가격이 3300엔으로 치솟았다. 주식을 판매하는 방법도 어딘가 꺼림직했다.

구미뿐이 아니다. 상장 후에 주가 침체로 괴로워한 사이버 에이전트의 후지타 스스무 사장은 “창업자 입장에서 보자면 기회지만 이만큼의 자금을 조달했다는 긴장감이 전반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그 이상의 성과를 보이고, 앞뒤를 맞춰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모처럼의 흥이 상장 후 부작용으로 깨진다면, 벤처 투자는 다시 정체 기로에 놓일 수도 있다. 20년 간 벤처기업을 연구한 히가시데 히로노리 와세다대학 비즈니스 스쿨 교수는 “지금은 버블 징조가 보이지만 좀 더 우수한 벤처 경영자들이 나타날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한다. 일시적인 붐으로 끝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산업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인가? 대기업과 벤처기업 모두 각오를 다시 한 번 다져야 할 것이다.

일본 경제 주간지 주간동양경제 특약
번역=김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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