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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제네바 합의가 결코 실패가 아닌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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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교수

“평생 단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회를 잡은 역사적 합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이란과의 핵동결 합의를 이렇게 변호한다. 그러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등 반대파의 생각은 다르다. 그들은 1994년 북·미 제네바 핵동결 합의가 8년 만에 폐기된 점을 들며 이번 합의가 큰 실책이라고 반박한다.

 당시 협상을 책임졌던 우리는 제네바 합의 폐기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역사를 오도하면 안 된다. 당시 빌 클린턴 행정부는 에너지 지원과 경제제재 해제, 북·미 관계 개선을 대가로 북한의 핵프로그램 포기를 끌어내 핵무장을 막았다. 그러나 몇 년 뒤 미국은 북한이 합의를 어기고 있음을 알아냈고,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합의는 폐기되고 말았다.

 네타냐후 총리가 지난달 미 의회 연설에서 지적했듯 현재 북한의 핵 능력은 향후 5년 안에 핵무기를 최대 100개까지 만들 수 있을 만큼 신장됐다. 그러나 이를 두고 제네바 합의가 실패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 합의가 없었다면 북한은 지금보다 훨씬 강한 핵전력을 구축했을 것이다. 90년대 초 미 정보당국은 북한이 90년대 말까지 나가사키에 투하됐던 원폭 수준의 핵무기를 매년 30개씩 양산할 능력을 갖출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이 예측은 실현되지 않았다. 제네바 협정의 폐기를 두고 “북한 같은 불량국가와는 외교를 할 수 없다는 증거”라고 주장하는 것도 옳지 않다. 중요한 건 불량국가와의 외교가 미국의 국익에 기여하는지 여부일 뿐이다. 또 불량국가에 군사력을 동원해야 하는 상황보다는 외교가 나은 선택이다. 그래서 이란과의 합의 성사는 의미가 있다.

 미국이 제네바 합의 폐기에서 얻어야 할 진짜 교훈은 따로 있다. 잘 굴러갈 것만 같았던 합의가 왜 몇 년 만에 좌초했느냐다. 합의에 이르기도 어렵지만 합의가 제대로 이행되도록 하는 게 훨씬 더 어렵다. 미국은 합의가 성사되는 순간 “이제 문제가 해결됐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제네바 합의가 이뤄진 뒤 미국은 이런 환상에 사로잡혀 합의 이행 과정을 하급 관리들에게 맡기고 다른 외교 현안들을 해결하려 했다. 그 결과 제네바 합의는 곧바로 비틀대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미국은 제재 해제와 관계 개선의 약속을 이행하지 못했다. 미국의 이런 실책이 북한의 나쁜 행동을 합리화하는 구실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불량국가와의 합의는 이행이 완료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 된다는 교훈을 기억해야 한다.

 이란과의 합의도 마찬가지다. 곳곳에 암초가 숨어 있다. 핵 능력 제한, 사찰, 제재 해제까지 전 과정이 제대로 이행되는지 꼼꼼히 검증해야 한다. 그러려면 미국과 파트너들은 합의 이행을 감시하는 국제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더 중요한 건 이란이 몰래 합의를 어기고 딴짓을 하는 걸 발견해도 놀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란의 사기행각에 대비해 명확한 계획을 세우고 대응 준비를 해둬야 한다.

 미국은 북한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 부시 행정부가 2002년 북한의 사기행각을 감지하자 북한은 곧바로 제네바 합의를 파기하고 핵개발을 재개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침공에 바빴던 부시 행정부는 아무런 준비 없이 북한과 협상해야 했고 어렵사리 만들어낸 2·13 합의는 이내 파기되고 말았다. 돌이켜보면 부시는 클린턴의 길을 따랐어야 했다. 북한을 비난만 하는 대신 제재 해제와 관계 개선 같은 당근을 제시하며 핵 포기를 설득했다면 훨씬 성과가 있었을 것이다.

 미국은 이런 교훈을 살려 이란을 다뤄야 한다. 이란에 당근을 제시해 분쟁을 해결하는 한편, 이란이 합의를 위반하면 정치·경제·군사적 조치로 응징할 수 있는 매커니즘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란과 정치적 관계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합의는 붕괴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제네바 합의에서 미국은 북·미 관계 개선의 조항을 넣었지만 수십 년간의 양국 적대 관계가 하루아침에 해소될 수 없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게다가 다른 현안들에서 북·미 긴장이 이어진 것도 합의 이행을 가로막았다. 이란과의 합의에도 같은 위험성이 존재한다. 이란이 오랜 세월 미국과 이스라엘에 쌓아온 적개심을 감안하면 말이다. 물론 이란은 북한과는 다르다. 적어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개혁의 움직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근거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이 이란의 대외정책을 완화시킬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미국 관리들은 이란과의 합의가 최종 타결될 때까지 북한과의 협상 경험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북한과의 협상에서 얻은 교훈이라곤 외교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뿐”이라는 강경파의 주장은 무시해야 한다. 외교는 정치적 의지와 집중된 힘이 있을 때만 성공한다. 합의는 단지 시작일 뿐이란 걸 기억하라.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