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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컴퓨터 적성검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서울 여의도동 36의 2 여의도백화점 빌딩 1130호 「진노적성연구원」 진학 상담실.
접수창구에 검사료 1만원을 낸 학부형 김옥자씨(46·여·서울 역촌동 80의 40)가 외아들 김일윤군(14·Y중 3년)을 데리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이 검사는 성적을 알아보는 시험이 아닙니다. 학생이 어떤 성격과 흥미, 특색 등을 지녔고 적성이 무엇인가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마음을 툭 열고 차분하게 체크해 주십시오』
원장 곽진홍씨(52)가 대학노트 크기의 문제집을 김군에게 건넨다. 문항수는 모두 2백 56개, 제한 시간 50분, 답안은 컴퓨터 채점지에 표시하도록 되어 있다.
김군의 테스트 자료는 곧바로 일본 후지TV, 산께이신문그룹 계열 회사인 후지에이트(8) 사로 보내져 컴퓨터에 입력된 뒤 10일쯤 뒤에 결과가 나온다.
김군은 국민학교 때부터 줄곧 반에서 1∼2등을 해 온 수재. 특히 과학과 수학은 언제나 만점이었다.
김군의 부모는 1년 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문과·이과 중 어느 과를 택해 주어야할 지 걱정하고 있던 중 우연히 친구의 소개로 이곳 컴퓨터 적성 검사소를 찾아 시험삼아 검사를 받아 봤다고 했다.
10일 후.
약속대로 일본에서 김군의 적성 자료가 도착했다. 「의학·생물·약학 계통이 가장 적합」 「예능계통은 부적합」 「농수산·원예·법률·문학 등 계통은 중간」, 성격은 「외향성」 「활동성」 「지도성」 「진취성」 「사회성」 등이 매우 강한 반면 끈기와 면밀성이 약간 부족하다. 흠미는 「수학」 「물리」가 가장 높고 「사무」 「예능」 「스포츠」 등이 매우 낮다로 나타났다.
김군은 『이과를 택하기로 부모와 결정을 보았다』고 말했다.
지난 1월 2일 상오 10시. 엄장순씨(52·서울 상암동 519의 4)는 「문과냐 이과냐」를 결정 못해 대입원서 접수를 망설이고 있는 3남 김병삼군(19·재수생)을 데리고 이 연구원을 노크했다.
고교 1학년 때 막연히 이과반을 택했던 김군은 3학년에 진급하면서 뒤늦게 자기 적성에 맞지 않음을 발견, 문과반을 희망했으나 좌절되고 말았다.
불가피 학력고사에 이과를 응시했으나 대입 원서는 한국외국어대 철학과를 지망, 쓴잔을 마셨다.
1년 간 대입학원 문과반에 들어가 올 학력 고사에서 상중위권의 점수를 따냈다.
그러나 또 올해도 「문과냐 이과냐」의 선택을 놓고 우왕좌왕하던 중 어머니 친구의 소개로 이 연구원을 찾아 컴퓨터 적성검사를 했다.
단연 교육·사회복지·안보 관계 등 분야인 문과로 나타났고 성격도 사회적 외향성·활동성·진취성·자기 과시성·동조성 등이 강하고 특히 논리성이 특출한 것이 지적됐다.
김군은 이결과에 따라 서슴지 않고 외대 철학과에 지원, 재기의 영광을 얻었다.
음대 지망생인 한재연양(17·선일여고 2년).
방학도 쉬지 않고 열심히 개인 지도를 받고 있으나 『과연 음악이 내 적성에 맞을까』라는 회의가 가끔 뇌리ㄹ,ㄹ 때렸다.
어머니 최희선씨(43·서울 역촌동 36의 29)의 권유에 못이겨 지난달 초순 이연구원을 찾아가 컴퓨터 적성검사를 해보았다.
결과는 문과인 예능계통(음악)으로 나타났고 성격·흥미·희망하는 직업, 좋아하는 과목 등이 1백%맞아 떨어졌다.
한양은 『연습삼아 검사해 보니 컴퓨터가 내 속을 훤히 들여다 본 것 같아 얄미울 정도』 라고 말했다.
이 연구원 중·고교생 진로 적성 검사의 감수를 맡고 있는 장병림 교수(65·심리학·서울대)는 『국내의 적성검사는 지능·흥미·성격·적성 등으로 구분돼 있고 자료가 단조로운 반면 컴퓨터 적성 검사는 일본에서 12년 간 조사·연구한 끝에 개발한 것으로 풍부한 입력 자료와 교육심리학·통계학 등을 기초로 한 과학적인 시스팀으로 짜여져 있어 적중률이 97%이상』이라며 『한꺼번에 흥미·성격·적성·진로 등을 검사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아들을 알기는 그 아버지 만한 사람이 없다(지자막여부)』는 것이 우리의 오랜 믿음.
자녀의 성격이나 재능·취미는 자녀를 낳아 길러 온 부모와 그 가정 환경과 밀접한 연관이 있고 따라서 부모는 누구보다 더 그 자녀의 적성 판정에 권위자일 수밖에 없다는 당연한 논리를 우리 옛 어른들은 경험으로 알았던 것이다.
얼마 전까지 학과·학교 선택 등 답답한 일에 부딪쳐 부모들은 흔히 사주·관상을 보거나 점을 치는 일이 많았다.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이 같은 점치기가 컴퓨터 적성검사란 새롭고 보다 과학적인 방법으로 바뀐 셈.
고도의 교육 이론을 바탕으로 작성된 문제지를 통해 컴퓨터 분석으로 적성을 알아내는 검사 방법은 점이나 사주·관상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합리적인 방법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10년, 20년을 품안에서 키워 온 부모보다 컴퓨터란 기계가 단 몇 십분 동안에 보다 많은 것을 알아내리란 기대는 무리다.
그 판정이 절대일 수는 더욱 없다. 어디까지나 하나의 참고자료임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김국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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